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 35 쾌락의 혼돈

쾌락의 혼돈—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
티모시 브룩 지음/ 이정∙강인황 옮김
2005.1.29/ A5신 400쪽/ 20,000원/ ISBN 89-87608-43-3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던 명대 사회 내부에서 꿈틀대고 있던 인간의 욕망과 시대적 격변에 초점을 맞추어, 왜 명대에 상업이 발달하고 전세계의 은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왔는지를 연대기적 내러티브 구조 안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책. 

● 편집자 서평
명대의 초상
16세기의 유럽인은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이런 고정관념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그랬을까. 혹시 서양인은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세상을 보고 있었던(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당시의 유럽인이 지구를 일주할 수 있는 배를 만들 만한 기술력을 가졌던 것은 확실하지만, 그들의 무역은 시장에 근거한 것도 아니었고 효율적인 가내공업에 의한 생산품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유럽의 무역은 타자를 약탈하고 노예화하고 귀금속이나 모피, 향신료를 다른 지역에서 헐값에 들여와 비싼 값으로 유럽에 되파는 게 전부였다. 유럽인은 중국에서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해서 사고 싶은 물건은 많았지만 중국에 내다 팔 물건은 거의 없었다. 가치 있는 물건이라곤 남아메리카의 광산에서 강탈한 은이 전부였다. 그리고 당시 유럽의 많은 모험가들이 중국으로 가는 최단거리의 항로를 발견하려고 경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명대에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 아닌 중국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중심에 대한 초상이다.
명대의 상업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는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이웃마을이라도 왕래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낙원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적 이동의 금지와 사·농·공·상의 차별적 신분질서를 명조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홍무제의 이 이상은 명대에 대한 후대의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이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농경제의 안정이 홍무제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상업의 발달을 가져온 것이다. 즉 농촌이 안정되면서 생산이 증대하고 잉여농산물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상업이 번창하게 되었다.
그리고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데 필수적인 교통·통신제도의 정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만 신속하고 원활하게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물자와 인력의 이동까지 원활하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국가의 교통통신망이 지방경제와 연계됨에 따라 확대된 시장경제는 기본적인 생산단위인 농촌 가구를 혼란에 빠트리지 않고도 도시노동과 농촌노동을 연속적인 생산과정 속에 조직화했고 생산과 소비를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소비 패턴을 재편했다. 비록 경제변화는 더뎠지만 신사층(紳士層) 내부에 서서히 침투하여 이들의 상업에 대한 경멸을 점차 잠재웠다. 이제 그들도 상업이 가져다주는 쾌락에 익숙해져 갔던 것이다.

문화적 변화
상업의 형성과 발달은 문화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지은이는 이 책이 명대의 경제사가 아니라 문화사라고 말할 정도로 명대의 문화를 풍부하고 세밀하게 이야기해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출판이다. 명대에는 상업의 발달과 함께 상업적인 출판이 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식인과 애서가들의 꿈은 만 권(萬卷)의 책을 소장하는 것이었다. 명대 이전에는 사실 '만 권'이라는 말은 '만세'(萬歲)라는 말처럼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했지만, 명대에 출판이 발달하면서 만 권을 소장한 사람들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명대 후기에는 권수로 만 권이 아니라 종수(種數)로 만 권을 소유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경제가 가장 발달했던 중국의 장난(江南) 지방에는 만권루(萬卷樓)라는 이름이 붙은 개인의 장서각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출판 관련 업종도 전문화되어 종이생산으로 유명한 마을이 생겨나는가 하면 오늘날의 출판단지처럼 출판사가 밀집해 있는 곳도 있었다. 서점은 단순히 책만 팔았던 것이 아니라 독자와 출판사의 가교 역할을 하고 팔릴 만한 책이 있으면 출판을 지원하기도 했다. 개인문집과 총서류 같은 일종의 학술출판도 활발했다. 중국역사상 최초의 신문도 발간되었다. 이 신문은 베이징 정계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소식지였다.
한편 장사로 돈을 번 부유한 상인들은 그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예술품을 사들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품을 구별할 수 있는 감식안이 없었다. 신사층은 돈만 많고 취향은 천박하기 그지없는 그런 졸부들을 경멸했다. 따라서 자신을 남과 구별짓고 문화적 우월성을 은연중에 과시하기 위해서는 예술품과 골동품을 고르는 안목과 그것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방법, 그리고 역사상 유명한 화가와 공예가들의 이름 및 그들의 작품을 외우고 있어야 했다. 명대에는 이런 지식을 정리한 책(<격고요론 格古要論>)이 적지 않게 팔려 나갔다.
고상한 취향을 따라하는 것 외에 도시에서는 유행이 생겨났다. 유행은 직물생산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비단과 면포는 경제발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도자기와 함께 전 세계로 팔려 나가는 중국의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상업은 상품의 생산과 이동만 자극했던 것이 아니다. 상업과 교통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이동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그러다 보면 상업적인 목적이나 공무상의 출장 이외의 여행도 많아지게 된다.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명승고적을 찾아 다니는 여행광들이 나타났고, 교통의 발달은 점점 더 먼 곳으로의 여행을 가능케 했다. 그리하여 명대 후기에는 개인적으로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물론 이런 여행은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지만 여성의 발을 영원히 묶어둘 수는 없었다. 절이나 도관(道觀)으로 동네 아낙네들과 떼지어 참배여행을 가겠다는 아내를 못 가게 막을 수 있는 남편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상업은 성(性)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국의 시장과 도시에서는 예외없이 매춘업이 호황을 누렸고, 풍류를 자랑하는 신사층과 시서화에 능한 예기(藝妓) 사이의 낭만적이고 때로는 비극적인 사랑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일부 신사층 사이에서는 동성애가 성행하여 미동(美童)이 나오는 매춘굴이 생겼다. 드물게 이곳에서는 명조 사회의 성적 질서를 역전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은밀하게 남장여인이 찾아와 남자의 성을 구매해서 밤새도록 놀다 갔던 것이다.
명조의 몰락
이런 문화적 변화 앞에서 명대 후기의 일부 신사층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말세라고 개탄하며 상업이 사·농·공·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돈과 쾌락이 난무하는 사회를 만든 악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들의 우려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신사층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상인행세를 하며 명청교체기라는 격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상업을 악으로 비난한 사람들은 틀린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회복되기를 바랐던 가부장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지배계급의 가치가 계절이 다시 찾아오듯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들은 명조가 멸망한 뒤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중국의 사회구조를 지탱해갔다.

저자 티모시 브룩(Timothy Brook)

1951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1973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1974~1976년에 교환학생으로 중국 상하이의 푸단(復旦) 대학에 유학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석사학위(1977)와 박사학위(1984)를 받았다. 앨버타 대학 연구교수, 스탠퍼드 대학 교수, 토론토 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UBC)의 아시아연구소 중국학과장 겸 같은 대학 산하 세인트존스 칼리지(대학원 과정) 학장이다. 이 책 <쾌락의 혼돈>으로 2000년 하버드 대학에서 수여하는 레벤슨 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Buddhism and the Formation of Gentry Society in Late-Ming China (1993), Collaboration: Japanese Agents and Local Elite in Wartime China (2004) 등이 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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