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03 로마에서 중국까지

로마에서 중국까지
장-노엘 로베르 지음 / 조성애 옮김
1998년 2월 26일 발행 / 336쪽 / 값 12,000원

기원의 여명기에 극서의 로마에서 먼 극동의 중국까지 물질과 사상이 자유롭게 교류된 상황―고대의 일상생활과 의식구조, 지리학의 진보, 역사, 그리스와 아시아 예술간의 흥미로운 융합, 운송수단, 무역로―을 총망라한 흥미진진한 고대 동서양 교류사. 


이 책은 마르코 폴로가 서양에 동양을 소개하기 약 1,100년 전에 이루어졌던 고대 동서양의 교류를 깊이 있게 추적한 살아 숨쉬는 기록이다. 저자는 동서양을 망라한 철저한 사료 분석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설과 현지 답사를 통해 고대 세계를 재현하고 있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모두 9개의 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다. 
때는 166년,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신이 중국 후한의 환제(桓帝)를 방문했다는 <후한서>의 짤막한 기록을 소개하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이 인류 역사상 동서의 첫 만남은 당시 세계를 분할하고 있던 4개의 대제국―로마, 파르티아, 쿠샨, 중국―의 평화와 공존 아래 이루어졌다고 밝힌 다음, 저자는 그 만남의 전사(前史)를 1장에서 소개한다. 
2장에서는 로마와 중국이 상대방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신화와 전설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근대 이후에 일반화된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마는 중국을 비단을 생산하는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황금의 나라로 보았고, 중국은 로마를 도교적 이상국가, 곧 무릉도원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3장에서는 로마가 세계의 지배자라는 당시 로마인들의 의식은 단지 꿈에 불과하며, 현실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4장에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동방과의 교류를 원활히 할 수 있는 방향, 곧 오리엔트로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5장에서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인 알렉산드리아와 팔미라의 흥망성쇠를 마치 한편의 드라마틱한 역사소설처럼 그린다. 
동방의 관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실크로드가 시작된다. 실크로드는 육로와 해로 두 가지가 있다. 6장은 육로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지 않고서는 완주할 수 없는 험난한 여정에 도전한 사람들의 면면과 여행 중에 겪게 되는 체험담이 대단히 흥미롭다. 특히 현장의 <대당서역기>를 압축한 이야기가 6장의 백미이다. 7장은 또다른 실크로드, 해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실크로드가 주로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육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고대 세계에서 해로는 육로 이상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실제로 166년에 중국에 최초로 발을 디딘 서양인도 해로를 통해서 왔다. 저자는 <에리트라이 해 일주기>라는 고대 항해 안내서를 이용하여 고대의 바다여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전해 준다. 
8장에서는 이런 한계에 도전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찾아서 그런 무모한 여행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교류를 촉발시킨 가장 중요한 상품, 비단과 향료가 어떤 제작공정을 거쳐 하나의 사치스러운 상품이 되었는지도 자세히 언급한다. 아울러 이 사치품들이 로마 경제에, 나아가 로마인의 물질적인 생활과 의식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지 분석한다. 
저자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물질적인 필요에서 추동된 동서의 교류가 궁극적으로 동서양의 정신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것이 9장의 주제이다. 여기서는 예술, 종교, 상징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동서양의 문화가 주고받은 영향을 비교하면서 고대 문명이 최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밝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서양의 기법과 표현양식이 불교의 정신과 융합을 이룬 간다라 미술의 해명이나 고대의 상징체계의 유형 비교는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이제 고대 동서 교류의 시대도 막을 내린다. 에필로그는 화려한 동서의 만남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순수했던 고대인들의 정신을 되새긴다. 
이 책의 특징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독서계에 로마 붐을 일으킨 일련의 책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특히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면에서, 저자는 서구인답지 않게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기존의 책들이 로마 황제 열전의 성격을 띠고 있음으로 해서 은연중에 서양 고대사를 일방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고대 동서양을 모두 포괄하는 그야말로 고대 세계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또한 황제나 귀족이 아닌 경제와 문화를 떠받치고 창조한 수많은 상인들, 예술가들, 직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지배자의 역사로만 인식되어 온 고대사를 새롭게 조명하게 해준다. 아마 이것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저자 장-노엘 로베르(Jean-Noël Robert) 

1952년 출생. 역사가. 파리 자유대학에서 라틴어와 고대 로마 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고대 로마사와 공화정시대의 로마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전문사가이다. 저서로 Les Plaisirs à Rome(1983), La Vie à la campagne dans l'Antiquité romaine(1985), Les Modes à Rome(1988), Eros romain(1997) 등이 있다. 저자는 아시아와 극동지역의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을 여러 번 여행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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