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31

반역의 책
조너선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2004.7.16/ A5신 376쪽/ 16,000원/ ISBN 89-87608-38-7

대청제국의 지존 옹정제와 옹정제에 반기를 든 대역죄인이 공동 집필한 희대의 기서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 <대의각미록>에 담긴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소수민족 출신의 군주로서 옹정제가 겪어야 했던 정치적 고뇌와 자신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열망이 빚어낸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 편집자 서평
쩡징은 웨중치 장군이 감히 옹정제의 면전에서 "폐하! 등용해서 쓰는 사람을 의심하지 마시고, 의심스러운 자는 아예 등용하지 마십시오"라고 대담하게 직언했다는 소문을 듣는 순간 반역을 꿈꾸었다.
<강희제>의 저자 조너선 스펜스의 최신작
역사와 문학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새로운 역사서술방법으로 우리를 매료시켜온, <강희제> <천안문> <현대 중국을 찾아서>의 저자 조너선 스펜스의 최신작 <반역의 책>. 이 책에서 스펜스는 다시 한번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반추하는 흥미진진한 과거로의 여행임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다.
이 여행의 주요 무대는 18세기 중국의 후난 성과 베이징. 주인공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자신의 뜻대로 신하들을 능수능란하게 통제하는 옹정제, 황제를 탄핵하기 위해 무모한 반역을 꾸민 고지식하고 나약한 지식인 쩡징, 우직하지만 속임수에 넘어가 대사를 그르친 어리석은 장시, 옹정제의 눈치를 살피며 보신(保身)에 급급하지만 끝내는 신임을 잃고 몰락하는 총독 웨중치, 옹정제의 의중을 옹정제 자신보다 더 잘 읽어내는 심복 오르타이, 쩡징을 극형에 처하라며 누차 상주문을 올리는 등 충성심을 과시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기회주의적인 관료들, 억울한 희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뤼류량의 후손들, 희대의 사기꾼 왕수, 계란으로 바위 치듯 무소불위의 권력에 저항하며 만용을 부리는 막빈(幕賓) 탕순가오. 이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의 대로를 따라 거닐다 보면 딱딱한 역사전문서가 아니라 한여름밤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후난 성 융싱 현의 산골마을에서 시작된다.
황제를 탄핵하려는 역모사건
저명한 사상가 뤼류량의 저작을 우연히 보게 된 융싱 현의 하급 지식인 쩡징은 그의 반청사상에 공감하고 백성이 겪는 고통에 분개하여 촨산총독(川陝總督) 웨중치에게 모반을 권하는 편지를 제자 장시를 통해 보낸다. 웨중치는 비록 지금은 만주족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지만 남송의 민족적 영웅 웨페이(岳飛) 장군의 피를 물려받은 이상 언젠가는 복수를 단행하여 중국의 옛 영광을 부활시킬 것으로 한인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웨중치는 쩡징의 편지를 가져온 장시를 투옥해 심문하고 이 사건을 황제에게 보고한다. 제위 찬탈자, 형제들을 죽인 살인마, 황음을 일삼는 색광, 술고래 따위의 노골적인 비난과 이적(夷狄)은 중화를 다스릴 수 없다는 화이론으로 가득 찬 편지내용을 보고받은 옹정제는, 이는 쩡징뿐 아니라 한인들 대다수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역모 관련자를 색출하여 가차 없이 처벌했지만 주모자인 쩡징에 대해서는 사면하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관용'을 베풀었다. 나아가 옹정제는 이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서 자기와 관련된 모든 소문을 일거에 잠재우고 아울러 중국의 사상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잘못된 화이관을 바로잡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옹정제는 <대의각미록>을 간행하여 쩡징과 비슷한 생각을 품은 다수의 한인을 설복하고 교화하려 했다.
반역자와 황제의 공저 <대의각미록>
이 역모사건에서 최대 미스터리는 옹정제가 역모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처벌하면서도 정작 주모자인 쩡징에 대해서는 신하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관용을 베풀어 사면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잃게 된 한족은 언제나 화이론(華夷論)을 들먹이며 만주족의 지배를 현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에 옹정제는 아예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한족의 화이론을 변형시키고자 신묘막측술을 펼친다. 술(術)이란 자유자재로 바람과 구름과 비를 일으키고 그 속에 몸을 숨기는 용처럼 군주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하들을 은밀히 제어하는 것이다. 옹정제는 밀정이나 주접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신묘막측술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켜 나갔다. 역모자는 자기의 타도대상이었던 그 황제의 집요한 설득과 훈육에 감복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충성을 맹세했을 뿐 아니라 옹정제는 쩡징을 역모자에서 충성스런 백성으로 변화시킨 과정을 책으로 엮어낸다. 이 책이 바로 <대의각미록>이다. <대의각미록>은 주로 옹정제와 쩡징이 주고받은 서면질의응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옹정제와 쩡징의 공저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옹정제는 청조의 관료들과 행정조직을 총동원하여 이 책을 전국에 배포하고 그를 괴롭혀온 온갖 유언비어와 반청사상을 불식시키려 했다. 그래서 단순히 배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각급 학교의 필독서로 지정하여 정기적으로 강독하게 하고 중앙에서 관료들을 파견하여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순회 강연회를 개최하기까지 했다.
소문과 진실
그러나 황제의 절대 권력, 청조의 관료조직과 방대한 정보망을 총동원한 대대적인 수사와 사상통제에도 불구하고 옹정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오히려 쩡징이나 왕수를 흉내내는 모방범죄가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쩡징과 뤼류량에 대한 옹정제의 판결에 대해 대놓고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정도로 사회적 동요가 심각해졌다. 그런 와중에 옹정제는 쉰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두 달 전 갑자기 치명적인 병에 걸려 발병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옹정제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옹정제의 넷째 아들 건륭제는 아버지를 괴롭힌 이 불미스럽고 의혹으로 가득 찬 사건을 하루속히 깨끗이 마무리짓고 싶었다. 즉위한 이듬해인 1736년에 그는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이 사건을 재심하여 옹정제가 용서해준 쩡징과 장시를 도로 잡아들여 대역죄로 다스린다. 그리고 옹정제가 간행하고 배포한 수십만 권에 달하는 <대의각미록>을 금서로 지정하고 모조리 회수하여 파기하는 조치를 내린다. 이로써 무수한 목숨을 앗아가며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던 쩡징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옹정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소문을 지워버리고 자기가 말하는 진실만을 남겨두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아들 건륭제는 소문만 없애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닫고 옹정제와 관련된 소문과 진실을 모조리 역사에서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래야만 소문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사람들은 소문과 진실을 모두 망각한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소문만 기억했다. 그리고 소문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대의각미록>에 나오는 소문과 궁중암투가 모두 진실이기 때문에 옹정제의 아들 건륭제가 이 책을 금서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는 그런 것
<반역의 책>은 단순히 특이한 한 사건에 대한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옹정제가 다스리던 18세기 초반 중국 사회의 전체상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주무대인 후난 성 일대의 지리, 행상들의 이동로, 농촌마을의 풍경, 지식인들의 교류 관행, 주접제도의 운용방식, 길조나 흉조를 조작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전통, 공식문건의 인쇄와 배포과정 등은 물론이고 청대의 중국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어떤 정서와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연속적이고 완결된 내러티브 안에서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사, 더 나아가서는 역사의 본질을 보게 된다. 역사는 인간의 의지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사람이 절대권력자라 하더라도.

저자 조너선 스펜스(Jonathan Spence)

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며 현재 미국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다.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윈체스터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9년 예일 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1965년에 역사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구겐하임 펠로십, 맥아더 펠로십, 라이오넬 겔버상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예술과학원과 미국철학협회 회원이다. 역사와 문학을 접목한 그의 독특한 역사서술방식은 연구와 일반 독자 모두를 사로잡는 마력을 갖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중국을 찾아서 1∙2> <천안문>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칸의 제국> <강희제> <왕 여인의 죽음> 등 10여 권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청나라 옹정제의 사상통제 다룬 <반역의 책>연합신문이봉석2004.7.23
02 淸 전성기 '역모통제 노하우'문화일보최영창2004.7.23
03 "반역자를 용서하라"동아일보유윤종2004.7.24
04 '냉혈한' 옹정제는 왜 반역자를 살려줬을까한겨레구본준2004.7.24
05 요동치는 민심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중앙일보조우석2004.7.24
06 '옹정제'는 실패한 독재자였나 비범한 통치자였나경향신문김용석2004.7.24
07 황제, 반역자와 함께 책을 쓰다조선일보김태훈2004.7.24
08 독재군주라도 민중은 두려운 존재부산일보이상헌200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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