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34 창힐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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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눈'을 가진 신화적 존재 창힐이 만들었다는 한자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이 겪었던 고충과, 그 고충을 희열로 나아가 문자의 향연으로 바꾸려 애썼던 '인간 창힐'들에 대한 이야기. 기발한 발상과 분방한 상상력으로 한자와 중국어의 역사적 여정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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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책32∙33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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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중국사 연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저자가 영욕으로 얼룩진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를 심도 있게 고찰함으로써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중국의 모순과 잠재력을 재평가하고 나아가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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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책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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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의 지존 옹정제와 옹정제에 반기를 든 대역죄인이 공동 집필한 희대의 기서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 <대의각미록>에 담긴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소수민족 출신의 군주로서 옹정제가 겪어야 했던 정치적 고뇌와 자신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열망이 빚어낸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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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책30 장안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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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양사학의 태두 이시다 미키노스케가 유려한 필치와 여러 분야에 걸친 놀랍도록 해박한 지식으로 엮어낸 당나라 수도 장안의 풍속과 역사 이야기. 초판 발간 이후 6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판을 거듭해온 명실상부한 실크로드학의 고전.
"사전이고 참고서이며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장안에 대한 글을 쓸 때 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호신부와 같은 책"—이노우에 야스시
"역사논문일 뿐만 아니라 낭랑하게 높은 목소리로 낭독하기에 충분한 문학작품"—에노키 가즈오
당대 문화 관련 작은 백과사전
진(秦)·한(漢)·수(隋) 왕조에 이어 중국역사상 네 번째 통일제국으로서 등장한 당(唐)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유례없는 안정과 번영을 이룩한 명실공히 중국 고대사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불꽃과도 같은 제국이었다. 특히 문화적으로 당은 문학·미술·음악·종교 등 각 분야에서 다채롭고 수준 높은 성과를 이룩했는데, 한족과 호족, 귀족과 서민, 중화와 외래의 것이 혼효하여 만들어낸 이 시기의 문화는 한마디로 고대 중국문화의 절정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수도 장안(長安)이 있었다.(서주[西周] 이후 당나라까지 모두 11개 왕조의 도읍이었던 장안은 당대 이후 두 번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당나라에 있어 장안의 존재는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에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화왕'(花王) 모란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동양사학의 태두로 불리는 저자 이시다 미키노스케는 대도(大都) 장안의 화사하고 번화한 봄풍경 속에 이 화려했던 고대제국의 역사와 문학과 풍속과 사람들을 녹여낸다. 그리고 그의 놀랍도록 해박한―역사는 물론 문학, 철학, 종교, 설화, 언어, 민속, 미술 등 여러 분야에 걸친―지식에 힘입어 이 책은 당대 문화에 대한 작은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게 되었다. 더욱이 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엮어가는 문학적이며 격조 높은 저자의 문장은 역사여행의 재미와 신기함을 넘어서 몽환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야간통행금지가 풀린 장안의 봄풍경
누구 집인들 달을 보고 한가로이 앉아 있을 수 있으리?
어디선들 등 이야기 듣고 보러 오지 않으리? (최액[崔液], <밤놀이>[夜遊])
장안의 봄밤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성대하게 펼쳐진 대표적 세시풍속은 상원, 즉 정월 대보름을 전후한 며칠간 계속되었던 관등(觀燈) 행사이다. 봄기운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이 시기가 되면 궁전이나 귀족의 저택은 물론 일반 사족과 서민의 집까지 대문마다 등을 밝히고 온갖 모양의 만등(萬燈)이 거리를 비추어, 장안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오늘날에는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성대한 규모의 축제가 펼쳐졌다. 당시의 행사가 얼마나 요란하고 화려했는지, 밤놀이를 나온 인파 때문에 "거마가 길을 메워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몇 십 걸음씩 떠다니"기도 했으며, 이 며칠간의 유희를 위해 "서로 호기를 부리며 재물을 마구 써대다가 파산지경에 이르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말쑥하게 빼입고 짙게 화장한 장안의 선남선녀들을 이렇게 밤거리로 불러낸 것은 만등의 눈부신 불빛만이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엄격하게 시행되던 야간통행금지가 정월 15일을 전후한 이 며칠간 해제되었다는 사실이 아마도 가장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환락의 즐거움 다함이 없어, 노래하고 춤추며 새벽에 이른다"(최지현[崔知賢], <상원일 밤>[上元夜])는 시인의 말에서, 이 둘도 없는 기회를 만난 사람들의 들뜬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농염한 모란꽃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
온 나라가 미친 듯 돈을 아까워 않네 (왕예[王叡], 모란[牧丹])
장안의 봄을 화려하게 수놓은 것은 관등뿐이 아니었다. 도시 곳곳에서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던 모란은 장안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나라 전체가 이 꽃에 취해, 모란이 필 무렵이면 꽃구경을 나서는 사람들로 장안이 들썩였으며 부자들은 한 송이 모란을 사기 위해 수십 수천 전(錢)을 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순전히 모란 때문에 유명해진 사찰과 정자, 개인의 저택이 장안에서만도 여기저기 있었다는 점은 당시 사람들의 모란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잘 말해준다.
3월 삼짇날 날씨는 쾌청하고,
장안의 물가에는 미인이 많구나 (두보[杜甫], 미인의 노래[麗人行])
모란만큼 화려하고 모란만큼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던 가기(歌妓)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안의 명물이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사설 기관(妓館)의 민기(民妓) 외에도, 궁전을 위해 설치된 궁기(宮妓), 관아에 배속된 관기(官妓), 고위 관료와 부호들이 두고 있던 가기(家妓) 등 여러 종류의 기녀들이 수려한 용모와 뛰어난 재예(才藝)로 뭇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고 인생을 망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나 기녀들에 빌붙어 사는 남자들이 있었다는 것, 양가집 처자들을 사고파는 인신매매꾼들이 있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데, 매년 봄 새롭게 진사시에 급제한 수재들이 기녀를 양성하는 교방(敎坊)에서 기녀들을 빌려다 크게 잔치를 열었다는 이야기, 전근을 가거나 은퇴하는 지방관리가 맘에 드는 관기를 데려갈 수 있었다는 점, 장안 안에서도 일류 기녀가 사는 동네와 삼류 기녀가 사는 동네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 재색을 겸비한 최고의 기녀를 부를 때는 고관들도 그녀의 이름이 아닌 자나 호를 사용하여 존중해주었다는 이야기 등은 당시의 풍류를 엿보게 한다.
장안 시민들의 놀이문화
상원절에 당시 사람들을 매료시키던 구경거리는 관등행사만이 아니었다. 이 날이 되면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어디서건 발하(拔河), 즉 줄다리기 놀이를 했다. 원래 특정한 날만 행하는 종교적 의미의 행사에서 시작된 줄다리기는 당대에 이르면 완전한 유희로서 변모하여 장안 등지에서는 제왕과 황비 등의 심심풀이로도 제공되어, 역사서를 보면 황제가 궁녀들의 발하를 구경했다거나 직접 시신(侍臣)들에게 발하놀이를 하도록 명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줄 위에서 공이나 칼을 던지면서 곡예를 부리는 승기(繩伎, 줄타기)도 대도시의 시장이나 놀이마당 등에서 갈채를 받으며 공연되었는데, 화려하게 단장한 미녀들이 줄 양쪽에서 함께 재주를 부렸다는 당시의 기록을 보면 번쩍이는 의상을 입고 높은 그네에 매달린 채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이는 오늘날의 서커스를 연상하게 된다. 또 성대한 국가의 대전(大典)에서 수십·수백 명의 무희들이 함께 갖가지 글자를 표현해내는 군무(群舞)인 자무(字舞)는 오늘날의 매스 게임과도 흡사하다.
당대의 유희에도 역시 연회와 주흥이 빠지지 않았다. 이 시기의 음주 관습에는 몇 가지 재미난 점이 있었다. 우선 잔치자리에서 식사와 음주를 구분하여 요리를 먹고 나서 술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술자리에서 술을 받은 사람은 바로 술잔을 들어야 했으며, 한 사람씩 순서대로 술을 마셨으므로 술을 받은 사람이 잔을 들지 않으면 다음 손님에게 술을 따를 수 없었다. 술기운이 오르면 춤과 노래, 흉내내기 따위의 장기자랑이 행해졌다. 또 종종 주호자(酒胡子, 바닥이 뾰족해 세우면 곧바로 쓰러지는 인형)라는 일종의 장난감을 가지고 술 마실 사람을 정했으며, 오늘날 "간장공장공장장은 장공장장" 같은 발음하기 힘든 말 빨리하기 같은 놀이를 해서 벌주를 먹이기도 했다.
그 밖에도 당대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호희(胡姬)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소그디아나·투카라 등지에서 당나라에 들어와 있던 이란계 여성들로 추측되는 이들은 푸른 눈에 하얀 피부로 장안의 술집에서 당나라 가기들과는 또 다른 이국적 아름다움으로 장안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으며, 그 증거로 시인과 묵객들은 이들을 노래하는 많은 시가를 남겼다.
이국취미의 유행과 활달했던 당대 여성들
호희라는 독특한 존재에서도 알 수 있지만, 당대는 이국취미(exoticism)가 크게 유행한 시대였다. 종교, 음악, 회화를 비롯해 당나라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 깊숙이 서역풍이 스며들었다. 귀인들의 밥상에는 호식(胡食, 서역풍 식사)이 올랐고, 페르시아산 술을 명품으로 쳤으며, 남녀 모두 옷깃을 접은 저고리를 입고 망토 같은 것을 두르는 페르시아식 복장을 했다. 건축물의 장식 도안에도 서역풍의 장식이 즐겨 사용되었다.
특히 당대의 여성은 이런 서역풍의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머리를 높게 올려 쪽을 찌는 계퇴(톂堆)나 뺨을 붉게 칠하는 화장법도 그렇고, 품이 좁은 저고리와 머리장식도 모두 서역의 영향이 역력했다. 호모(胡冒)를 쓰고 얼굴을 드러낸 채 말을 타고 나들이 가는 당대 여인들의 모습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말을 즐겨 타다 보니 자연스레 남장이 유행하게 되었고, 옅은 화장을 해서 심지어 화장기 없는 얼굴을 세련된 품격으로 생각했으며, 폴로(polo)의 전신이라 할 만한 타구(打毬) 같은 격렬한 스포츠나 사냥을 즐기는 여성들도 많았다. 이렇듯 당대 여성들의 활달함은 전례가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송대 이후의 남녀 유별한 유교문화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당대의 도서 수집 열풍
당대에는 오늘날처럼 책을 진열해놓고 파는 서점이 있었고, 오늘날의 책 마니아 못지않게 엄청난 장서를 자랑하는 애서가들이 있었다. 한번에 수만 권을 찍어낼 수 있는 인쇄기가 아직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긍(吳兢)·장예(蔣乂)·위술(韋述) 등은 "사람을 사서 베끼고 직접 교정해서" 모은 책이 2∼3만 권에 이르렀다고 하니 책에 눈먼 사람들이 "명류의 옛 문집, 옷을 전당 잡혀 샀다"고 읊은 이함용(李咸用)의 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들 애서가들은 단지 책을 모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첨(牙籤) 등을 이용해 서고를 정리하고 도서목록까지 손수 만들었다. 중당(中唐)의 고관 유공작(柳公綽)은 경(經)·사(史)·자(子)·집(集)의 각 책을 세 본씩 갖춘 뒤 가장 좋은 한 본은 서고에 잘 모셔 영구보존하고, 다른 한 본은 평상시에 들춰보는 참고용으로, 나머지 한본은 자제와 후학들의 학습용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개방성과 다양성이 새로운 문화를 꽃 피운다
비록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한 나라의 문화가 발전하고 융성하기 위해서는 자기와는 다른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개방성은 외부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자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당대 문화의 저변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이를테면 남녀의 차별이나 이민족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당대 문화는 오늘날 문화비평가들이 말하는 잡종적인(hybrid) 문화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혼성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개방성과 다양성은 궁극적으로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하기보다는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은 역사적으로 예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저자 이시다 미키노스케(石田幹之助)
1891년 일본 지바(千葉) 시에서 태어났으며 도쿄 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세계적인 동양학 전문도서관 동양문고(東洋文庫)를 설립·육성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 동양학 연구의 선구자로서 중국사 다방면에 걸쳐 연구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당대(唐代)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독보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역사학자로서뿐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빼어난 문장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1974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歐人の支那硏究>, <東亞文化史叢考>, <石田幹之助著作集> 등이 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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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책 29 원시적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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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아시아'를 원시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종래의 민족지적 시선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시선의 대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민족지 또는 포스트콜로니얼 세계의 문화번역으로서의 현대중국영화 읽기. 영화비평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이론적 정교함을 보여주는 문화연구의 압권.
루쉰이 본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너무나도 유명한 루쉰의 충격적인 체험을 재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강의가 일찍 끝날 때, 선생님은 종료시간까지 자연풍경이나 뉴스 슬라이드를 보여주곤 했다. 당시는 러일전쟁 중이었고 그래서 전쟁에 관한 영화[슬라이드]가 많았다. 나는 강의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환호하면 따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고 있던 영화에 오랜만에 중국인 몇 명이 나왔다. 그들 중 한 명은 묶여 있었고 그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 모두는 체격이 건장했지만 무감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손이 묶인 사람은 러시아의 스파이 노릇을 한 자로 본보기로서 공개적으로 일본군에 의해 참수될 참이었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이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도쿄를 향해 떠났다. 이 영화를 본 뒤부터 의학 따위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약소한 후진국 국민은 아무리 몸이 튼튼해도 이처럼 무의미한 본보기의 대상이나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이 병으로 많이 죽어간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정신을 개조하는 일이다. 당시 나는 문학이야말로 그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문학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소설집 <납함>의 '자서'에서 밝힌 이 루쉰의 체험은 지금까지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이 문학에 투신하게 된 동기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해석되어왔고, 수많은 중국문학 비평가들은 루쉰의 이 고백에 감동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비평가들의 그런 문학적인 해석에는 무언가 간과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레이 초우는 지금껏 절대진리로 받아들여졌던 이 루쉰의 고백에 대한 문학적인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루쉰이 받은 시각적 충격에 주목한다. 루쉰은 자기나 자기의 동포들이 세계의 눈에는 구경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국민의식을 깨달았으며, 동시에 새로운 강력한 미디어가 전통적인 문학의 역할을 빼앗고 그것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레이 초우는 루쉰의 문학 안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이미지의 역할에 주목하고 루쉰의 문학을 문자와 시각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원시적 열정
이러한 역사와 문화의 변혁기, 즉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전통문화의 기호를 대체하는 때 등장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s)이다. 여기서 '원시적'이라는 말에는 이중의 의미가 각인되어 있다. 어떤 권위를 가진 '기원' 혹은 '낙후된 것.' 따라서 '원시적 열정'은 잃어버린 순수한 기원 혹은 뒤쳐진 어떤 것으로서의 '원시적인 것'을 되찾고자 하는 정념이다. 이 '원시적인 것'은 문화변혁기에 시간과 언어의 개별성을 뛰어넘어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공통의 기반으로 상상되거나 발명된다. 그것은 늘 환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페티시즘이나 이국취미 또는 오리엔탈리즘의 형태를 띤다. 저자가 이 책에 '원시적 열정'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타자 안에서 '낙후성'이나 '기원'을 찾으려고 하는 서양적인 응시에 대한 비판을 시사하기 위해서이다. 중국에서 근대는 이런 서양적인 '원시적 열정'을 스스로 내재화하는 과정이자 결과로 나타난다. 저자는 중국 안에 '제1세계'적 제국주의와 '제3세계'적 내셔널리즘이 공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레이 초우는 중국영화 안에서 원시적인 것이 머무르는 장소로 '여성' '자연' '어린이'에 주목한다. 1930년대 롼링위(玩玲玉) 주연의 무성영화에서부터 1960년대 문화대혁명기 마오쩌둥과 홍위병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이미지를 거쳐, 1980년대 천카이거(陳凱歌)와 장이머우(張藝謀) 등의 영화를 공동체, 국가, 일, 학습, 사랑, 혁명, 젠더 등과 같은 범주가 뒤섞이는 교차점으로 읽으려고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녀의 논의가 단연 돋보이는 것은 그녀가 영화제작과 유통이라는 국제영화시장에서의 권력구조의 문제, 다시 말해서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경제적·권력적 격차라고 하는 문화정치학의 근본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오늘날 문화비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다양한 화두―내셔널리즘, 오리엔탈리즘,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페티시즘, 정체성, 해체, 포스트콜로니얼, 문화표상, 미디어, 시각(視覺), 민족지 등등―와, 수많은 사상가들―마르크스, 프로이트, 하이데거, 그람시, 벤야민, 푸코, 알튀세, 제임슨, 데리다, 아탈리, 스피박 등등―의 담론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진지하고 정교하게 자신의 논의에 이용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영화제작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적·정치적 상황을 포함시켜 영화를 '정독'하는 레이 초우의 자세와, 스크린 상의 이미지만을 끄집어내서 '정독'하는 태도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그녀의 독해는 이미지를 세부적으로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위에서 인종, 젠더, 민족성(ethnicity) 등과 같은 문화비평의 틀을 비판적으로 적용한다. 즉 이미지 비평도, 주제 비평도 아닌 제3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문화번역
레이 초우가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서양에서 비서양을 향한 응시에 기초한 일방통행적인 민족지를 비판한 3부이다. 그녀가 서문에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지만, 현대중국영화라는 이 책 전체의 관심사와, 3부의 서양중심적인 민족지에 대한 비판 사이에는 얼핏 거리감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3부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현대중국영화와 민족지를 구분하여 별개의 것으로 다루는 권력적인 행위를 이 책은 문제 삼고 있다.
그녀의 비평의식이 어떤 문화를 '타자'로 삼아서 논하는 사회조직이나 담론의 구조를 비판하고 그것의 변혁을 지향하고 있음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발터 벤야민의 번역론을 근거로 그녀는 현대중국영화가 포스트콜로니얼 세계에서 문화번역―서로 다른 문화권끼리, 서로 다른 계급문화끼리, 서로 다른 미디어끼리의 교섭과 경합―의 획기적인 예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번역'의 관점을 결여한 영화론이나 문화론은 사회조직이나 담론구조의 정치적·경제적 역학을 분석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레이 초우의 관심은 하나하나의 영화작품을 논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현대중국영화와 같은 문화를 '타자'적이고 '원시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영화비평과, 서양 이외의 문화를 타자화하는 기존의 민족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태도 사이의 유사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데 있다. 나아가 그녀는 메리 루이스 프랫의 '자기민족지'(auto-ethnography)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타자'의 시선을 중심에 둔, '보는 주체'와 '보여지는 객체'의 이항대립을 허물어뜨리는 양방향적인 새로운 민족지로 현대중국영화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자기를 보는 새로운 시선
이 책은 이른바 제3세계 영화에서 두 가지 측면, 즉 영상 이미지의 해석과, 반(反)오리엔탈리즘 혹은 반제국주의 비평담론이 양방향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정치적 비평의 방향으로 영화연구의 지평을 넓혀간다. 이런 방향성을 가진 영화론은, 이를테면 단순히 오리엔탈리즘적인 경향을 영화의 스토리나 주제에서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상의 이미지가 얼핏 오리엔탈리즘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세부에서는 그것을 내파(內破)하는 전술이나 비판이 있다는 데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매혹시킬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홍수 속에서 국내 대중과 비평가의 호응을 받지 못했거나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주목받은 영화들, 특히 다큐멘터리적인 영화와 저예산 영화에 대한 '정독'에 큰 기여를 할 것이고, 영화 제작과 유통의 권력구조가 반영된 영화비평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레이 초우(Rey Chow)1957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홍콩 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네소타 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어바인) 교수를 거쳐 현재 브라운 대학 교수이다. 전공은 미디어론과 비교문학. 저서로 Woman and Chinese Modernity (1991), Writing Diaspora (1993) 등이 있다. 이 책 <원시적 열정>은 미국 내 언어학연구자와 문학연구자의 학회 중에서 가장 큰 단체인 근대언어협회(MLA)에서 매년 가장 우수한 연구서에 수여하는 '제임스 러셀 로웰 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관련서 그리고 영화를 다룬 책에 이 권위 있는 상이 주어지기는 이 책이 최초이다.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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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책 28 세계화의 원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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