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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윤리위원회 이달의 읽을만한 책
'국체'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일본 내셔널리즘의 사상적 변천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한 책. 세계화라는 제국의 욕망이 일으킨 지정학적 변용의 한복판에서 내셔널리즘의 폭력성을 해체하고 개방적인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는 한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고뇌에 찬 사색을 만날 수 있다. |
내셔널리즘이라는 유령
새해 벽두부터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이웃나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웃나라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새해 벽두 전격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혹은 그들은 어떻게 그런 망동이나 망언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
일본 내셔널리즘의 특징
이 책은 일본 메이지 시대부터 양차 세계대전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 근대사를 충동해 온 최대의 이데올로기인 내셔널리즘을 사상사적으로 풀어 쓴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일본 내셔널리즘을 논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은 '국체'(國體)이다. 지은이 역시 당연히 이 '국체' 개념을 분석하는 데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전 국민을 침략전쟁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이웃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때 가장 자주 외쳤던 구호도 '국체호지'(國體護持)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국체란 무엇인가? 지은이도 말하고 있듯이, 국체는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 한자말에는 사전적인 의미—①주권의 소재에 구별되는 국가형태 ②나라의 체면 등—가 있지만, 지은이는 그런 식으로 틀에 박힌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국체의 작동원리에 주목하여 국체의 정치적 함의보다는 정서적 함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체 개념 자체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일본인을 하나로 묶는 의미를 재생산해 왔기 때문이다. 국체의 동력이 냉혹한 정치역학이 아니라 심정적인 것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위에서 말한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이다.
그는 지난 2001년 8월 13일 총리 재임 중 첫 번째 신사참배를 하고 나서,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기원했다. 그것이 왜 나쁜가?"라고 강변했고, 올해 벽두에 네 번째 신사참배를 하고 나서는 "신사 참배는 일본의 전통이며, 주변국들도 한 나라의 전통이나 습관을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 두 말에는 공통적으로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있는데, 외부의 당신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는 언외의 의미가 깔려 있다. 지은이의 주장에 의하면, 내셔널리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정치적 의도나 정치성이 아니라 바로 정서적·심정적 측면이며, 따라서 내셔널리즘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도 정서적·심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내셔널리즘, 근대의 구원인가 병리인가
이 책의 머리말은 위와 같은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비판이자 반론이며, 1부는 내셔널리즘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파악하는 대표적인 견해들은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 있다. 분량 면에서 이 책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2부는 역사적으로 일본 내셔널리즘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천해 왔는지를, 앞서 말한 국체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그 사상적 계보를 추적한다.
2부 1장은 국체 내셔널리즘을 보는 네 가지 관점을 정리하고, 2장은 국체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주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사상을 통해 탐색한다. 2장 끝부분(본문 pp. 77~78)에 인용되어 있는,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전기를 쓴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에게 보낸 춘원 이광수의 편지는 일순 우리를 아연하게 만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러나 냉정하게 천천히 다시 읽다 보면 근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왜 여러 개의 정체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의문은 후반부로 가면서 풀린다. 2부 3장에서 메이지 시대에 천황=국체 이데올로기가 모든 '신민'의 몸에 배게 만드는 과정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2부 4장은 국체 내셔널리즘이 민족적 순수성을 찬양하는 극단으로 치닫다가 패전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2부 5장은 패전과 함께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국체'가 이른바 전후시대(1945년 이후)에 어떻게 되살아났는지를 살펴본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천황을 인간으로 격하시키고 일본에서 민주주의를 실시하기보다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천황제를 용인하는 일종의 정치적 담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전후 국체는 미일 담합체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런 다음 전후 국체 내셔널리즘의 변화를 와쓰지 데쓰로, 난바라 시게루, 에토 준, 마루야마 마사오를 통해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그 중에서도 마루야마 마사오는 지은이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거론하는 대상이다. 마루야마 마사오야말로 일본 내셔널리즘 사상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루야마의 생각을 거칠게 요약하면, 국체 내셔널리즘은 본래는 순수하고 건전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침략적 국권주의와 초국가주의로 변질되면서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따라서 건전한 내셔널리즘과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루면 대단히 인간적인 근대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내셔널리즘의 '원형'의 건전성과 순수성 자체에 깃들여 있는 광신성과 폭력성을 분쇄하지 않으면 근대를 제대로 비판할 수도 근대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 강상중(姜尙中)
1950년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에서 태어났다. 1979년 와세다 대학 대학원 정치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도쿄 대학 사회정보연구소 교수이다. 전공은 정치학과 정치사상사. 저서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1997), <동북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2002), <내셔널리즘>(2004) 등이 있다.
북리뷰
제목 | 게재지 | 글쓴이 | 날짜 | |
01 | [손에 잡히는 책] 강상중의 <내셔널리즘> | 국민일보 | 한승주 | 2004.1.16 |
02 | 일본 내셔널리즘, 악몽은 되풀이되나? | 한겨레 | 구본준 | 2004.1.17 |
03 | 한중일 역사분쟁 속 '지역협력' 주장 책 잇달아 | 한국일보 | 김범수 | 2004.1.20 |
04 | 신자유주의와 네오내셔널리즘 | 서평문화 | 김석근 | 2004.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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