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13 칸의제국

칸의 제국―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 김석희 옮김
2000년 5월 30일 발행 / 351쪽 / 값 15,000원

*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우리 시대 최고의 중국사가 조너선 스펜스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서양이 중국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13세기 후반 마르코 폴로의 묘사에서 20세기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서양인의 마음 속에 비친 중국 이야기. 


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
남편과 함께 1859년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20세의 스코틀랜드 여성 제인 에드킨스는 그해 9월 들뜬 마음으로 고향의 어머니한테 우쑹(吳淞) 강을 유람한 감상을 적어 보냈다.
양쪽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휜 가지를 맑은 물 속에 드리우고 있었다. 황금빛 옥수수가 물결치는 수많은 밭이 강에서 멀리까지 뻗어 있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산뜻한 농가들이 엿보였다. 우리는 꽃이 만발한 덩굴식물로 초록빛을 띤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초록빛 언덕마루에 오래된 탑이 하나 서 있었다. 모서리와 돌출부가 수없이 많고 가장자리에 청동과 놋쇠를 두른 그 탑은 아침 햇살을 받아 맑은 날씨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자신이 본 그대로를 묘사했다. 그러나 그녀가 묘사한 장면은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널리 퍼진 벽지와 도자기와 정교한 무늬를 새긴 상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안과 거의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오늘날 서양의 실내장식물들에 그대로 남아 있다.
조너선 스펜스의 <칸의 제국: 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은 이런 '일람'(sightings)의 역사이다. 13세기 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출판된 이후 서양인들은 끊임없이 중국에 매료당했고 때로는 이상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했는데, 이 책은 지난 700년 동안 중국을 접한 무수히 많은 서양인들―선교사, 군인 무역상, 학자, 철학자, 소설가, 언어학자, 시인, 극작가, 외교관, 정치가, 몽상가, 의사 등―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남긴 기록들을 꼼꼼히 검토하여 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을 펼쳐 보인다.

중국 일람의 역사
이 책은 얼핏 독립된 12개의 장으로 구성된 듯이 보이지만 각 장은 연대기적으로 절묘하게 이어져 있다. 이 연대기의 서막을 연 인물은 1253년에 교황의 특사로 카라코룸을 찾은 빌렘 반 뤼스부르크이다. 그의 경험은 서양인의 중국 일람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마르코 폴로의 경험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서양에 소개했다. 그러나 폴로는 17년을 중국에서 살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서양인의 눈에 가장 인상적으로 보였을 차(茶) 문화나 전족(纏足) 관습, 중국 고유의 필기방법인 붓글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폴로의 유산이 정확한 정보보다는 그가 불러일으킨 호기심 속에 더 많이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극단적인 예를 그대로 받아들인 인물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다. 그는 <동방견문록>을 읽고 환상에 젖은 나머지 자신이 1492년에 발견한 신대륙이 중국이라고 생각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서양의 중국 일람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1540년대까지 포르투갈인들은 마카오로, 에스파냐인들은 필리핀으로 몰려감으로써 중국 일람의 '가톨릭 세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시에 쓰인 보고서나 선교책자 또는 소설을 통해 중국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특이한 나라로 서양인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

17세기 말 가톨릭 국가들의 해외정복과 영토확장이 절정에 달하면서, 가톨릭 국가의 뒤를 이어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네덜란드와 영국의 외교관과 군인들이 중국을 탐험하게 되었다. 현실주의자를 자처한 이들은 전통적 신례(臣禮)인 고두(叩頭)를 강요하는 중국에게 새로운 적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영국인들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는데, 그 과정을 존 벨, 조지 앤슨, 조지 매카트니가 남긴 세 가지 일람을 통해 추적한다. 이 무렵 서양에는 이런 외교문서를 자료 삼아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나타났다. 윌리엄 디포나 올리버 골드스미스 같은 창의력에 호레이스 월폴 같은 풍자적 재능을 갖춘 작가들은 중국에 대한 관념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중국의 대중화는 중국 문화의 여러 측면을 모방하는 유행과 더불어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시누아즈리(chinoiserie, 중국 양식)라는 말까지 생겨났다(이 책의 표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중국 열기에 편승한 라이프니츠, 몽테스키외, 볼테르 같은 계몽사상가들은 그들의 학문 체계에 중국을 끼워넣기 위해 중국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영국의 여성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중국 일람의 작성자로 등장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비록 그것은 반짝하고 사라진 전조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맨스필드 파크>에서 매카트니의 일기와 중국에서 살았던 오빠의 경험을 활용한 것은 19세기 서양에서 중국 일람을 좀더 개인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만든 새로운 여성 세대의 출현을 예고했다. 6장 '여성 관찰자들'에서는 19세기 초의 엘리자 브리지먼에서 출발하여 앞에서 소개한 19세기 중엽의 제인 에드킨스를 거쳐 19세기 말의 사라 콩거와 에바 프라이스로 이동하면서 중국의 매력이 차츰 심화되는 '위험'에 자리를 내주는 비극적인 과정을 볼 수 있다.

19세기 중엽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인 노동자들은 중국으로 건너간 서양인들이 받은 위협보다 훨씬 더한 고통과 차별을 받았다. 미국의 화교들은 고향을 꿈꾸며 차이나타운이라는 성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크 트웨인과 브렛 하트의 중국 일람에는 매혹과 호감과 초조감이 뒤섞여 있다. 그들은 소설 속에서 인종차별을 맹신하는 동시에 거부함으로써 자신들의 오해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려 했다. 이들에 이어 등장한 작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고정관념을 만들어 냈다. 19세기 말의 '차이나타운 픽션'은 은연중에 중국인을 악의 상징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한편 프랑스인들은 두 세기에 걸친 중국 일람과 경험을 증류하여 폭력과 매력과 향수가 뒤섞인 상당히 일관성 있는 환상을 만들어 냈다. 피에르 로티와 폴 클로델 그리고 빅토르 세갈랑은 한때 중국에서 살았고 중국의 진정한 모습과 소리와 냄새를 포착했다고 믿었다. 이들은 상상적인 표현 속에서 중국인의 활동범위를 제한하긴 했지만 서양의 문학적 어휘를 크게 늘려 주었다.
프랑스의 중국 정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미국의 중국 정서도 형성되어 갔다. 영화감독 그리피스는 <꺾인 꽃> 같은 영화에서 미국에 대한 중국인의 위협을 영속화하는 동시에 문화의 핵심 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찾으려 했다.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고대 중국의 시(詩)와 역사를 지속적으로 탐구했으며, 소설가 펄 벅은 중국 농민의 생활을 치밀하게 재현해 내려는 시도를 했다. 또 극작가 유진 오닐은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관계를 반자본주의적 우화로 바꾼 희곡을 발표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중국은 정치적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결성과 혁명운동이 중국 일람의 급진주의화를 불러왔던 것이다. 앙드레 말로는 이국정서적 인식에 물들어 있었던 입장을 버리고 '인간 조건'의 한 본보기로서 중국 혁명에 뛰어들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중국 경험 속에서 혁명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그런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동정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거 스노 같은 반권위주의자들은 중국의 게릴라 사회주의와 마오쩌둥의 투박한 방식 속에서 인류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했다.
중국 통치자의 권력에 대한 신비감은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의 막강한 권력을 묘사한 이래 서양의 중국 일람을 지배해 왔다. 1911년 청 왕조가 몰락한 뒤 40년 동안, 중앙집중적 권력에 대한 환상은 폭력과 항일 전쟁에 의해 뒷전으로 물러났지만, 중국 공산당의 집권은 다시 과거의 신비감을 되살려 놓았다. 이런 신비감은 서양인의 눈에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의 폭정과 맞물려 새로운 차원의 전체주의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를 비트포겔은 지난 2세기 동안 이루어진 중요한 체제 구축 시도를 신중하게 돌아보고 중국 황제들의 잔학성에 대한 역사 기록을 분석했다. 그런 우울한 시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는 마오쩌둥을 만난 뒤 마오쩌둥을 황제보다는 부드럽지만 어떤 면에서는 황제에 버금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장 레비는 절대권력의 해악과 내적 공허함에 대한 신비감을 진시황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소설로 형상화함으로써 한 세기 전의 중국 정서로 되돌아갔다.

중국 일람의 역사는 20세기의 세 천재 작가―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탈로 칼비노―에 이르러 끝이 난다. 이들은 중국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중국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인, 특정한 순간에 창조적 에너지를 자극하고 결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카프카에게는 중국이 권위와 개인적 노력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었고, 보르헤스에게는 시간의 흐름과 무한해 보이는 인간의식의 변화를 결집시켜 주었으며, 칼비노에게는 기억과 경험의 다양한 층과의 비교 문화적 접촉을 교차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서양의 중국 일람을 이해하는 열쇠
이처럼 이 책은 중국에 관한 책인 동시에 문화적 자극과 반응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양인의 중국 일람은 조잡한가 하면 섬세하고, 호의적인가 하면 악의적이고, 지적인가 하면 감성적이고, 환상적인가 하면 현실적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듯하면서도 늘 경이와 신비감에 경도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것은 앞에서 인용한 제인 에드킨스의 편지에서도 드러났듯이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중국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그것을 간파하고 있다. 그는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를 통해 이것을 문제삼는다.
"네가 한사코 말하지 않는 도시가 하나 있다." 마르코 폴로는 고개를 숙였다.
"베네치아." 칸이 말했다.
마르코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지금까지 폐하께 말씀드린 게 베네치아말고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자 폴로가 말했다. "저는 다른 도시를 설명할 때마다 항상 베네치아에 대해 무언가를 말씀드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서양은 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국을 환상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지은이의 대답은 이렇다.
비밀은 귀에 있다. 듣고 싶은 말, 기대하는 말만 듣는 귀에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나한테 수수께기로 남아 있다.
그 누구보다도 중국 문화에 매료되어 지난 40년간 중국사를 연구했고 당대 최고의 중국사 학자로 꼽히는 지은이의 이 자기성찰적 고백은 너무나 진솔해서 하나의 역설로 다가온다. 서양과는 비할 바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중국과 문화적 접촉을 해 온 우리의 마음속에는 과연 어떤 중국이 자리하고 있을까?

저자 조너선 D. 스펜스(Jonathan D. Spence)

예일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Sterling Professor)이며 현재 미국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다.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윈체스터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9년 예일 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1965년에 역사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구겐하임 펠로우쉽, 맥아더 펠로우쉽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예술과학원과 미국철학협회 회원이다. 역사와 문학을 결합한 그의 독특한 역사서술방식은 연구자를 비롯한 일반 독자 모두를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쓴 책으로는 The Death of Woman Wang, <천안문>,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God's Chinese Son 등 10여 권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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