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역사학자 미야자키는 <주비유지>라는 자료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양심적인 독재군주' 옹정제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간다.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하는 옹정제의 전기이자 근세 중국의 관료제, 재정, 재판, 풍속을 이해하는 역사서이다.
옹정제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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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는 1678년 강희제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45세 때 강희제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이후 1735년 사망할 때까지 13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다. 아버지 강희제와 아들 건륭제의 재위기간―강희제가 61년, 건륭제가 61년이었다―에 견주면 형편없이 짧아 보이지만, 옹정제는 그 어느 황제보다도 많은 일을 했으며 청조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여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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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독재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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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우리나라에서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때, 이웃 중국에서도 한 사극이 중국 TV방영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12억 중국인을 사로잡았다. 다름 아닌 '옹정제'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였다. 비록 드라마를 통해 옹정제는 12억 중국인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청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0여 년 전부터 '옹정학'(雍正學)이란 용어를 사용할 만큼 옹정시대에 주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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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옹정학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올라가면 이 책 <옹정제>가 그 진원지임을 알게 된다. 이 책이 나오기 이전에는 청조의 기틀을 다진 강희시대나 청조의 전성기를 구가한 건륭시대는 높이 평가되었지만, 옹정시대에 대해서는 앞뒤의 두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나 간주곡 정도로 과소평가되었다. 옹정제 개인에 대해서도 폭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정략가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이런 기존의 평가를 거부한다. 그는 옹정시대 13년이 있었기에 청왕조는 건륭시대에 최대의 번영을 맞게 되었고, 옹정제 사후 한 세기 반 이상을 더 지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무엇보다도 옹정제의 정치력을 높이 평가한다. 옹정제는 아버지 강희제처럼 대외적으로 화려한 전공(戰功)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내치(內治)에 있어서는 중국 역사상 아니 세계 역사상 가장 완벽한 독재군주였다고 단언한다. 옹정제는 초인적인 의지와 정력으로 만주족의 100배가 넘는 중국인과 방대한 중국 대륙을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나갔다. 그것은 천명(天命)이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는 것, 곧 황제로서 천하만민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옹정제는 만일 자신이 이 임무를 다하지 못하면 천명은 다른 데로 가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명의 완수를 방해하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 형제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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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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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에게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는 정치였다. 당시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과거→입신출세→축재→특권계급 형성으로 이어지는,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보스정치였다. 따라서 여론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특권지식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 불과했다. 중국정치의 맹점은 벼슬을 얻으려면 과거시험을 준비할 만큼 집안이 부유해야 하며, 또 재산을 모으려면 벼슬을 얻어야만 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관권과 결탁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었다. 사업가는 정치보스에게 상납하는 헌금을 충당하기 위해 탈세를 하고 하층민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노동의 재생산이 불가능해진다. 청조 초기의 황제들은 유교경전에 대한 지식이 짧아 과거시험과 관련된 일을 한인(漢人) 대신들에게 맡겨두는 형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과거합격자는 시험감독관의 자유재량에 따라 결정되었고, 감독관과 합격자 사이에는 사제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보스와 부하의 인연이 맺어졌다. 이리하여 옹정시기에 이르자 정치보스를 중심으로 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었다. 옹정제는 바로 이 점을 꿰뚫고 있었다. 옹정제는 송대(宋代) 이후 깊게 뿌리박힌 학연·지연·혈연에 따라 단결하는 붕당을 깨뜨리고, 보스정치와 부정부패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영향력이 큰 정치 보스들을 제거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인재들을 발탁했다. 그리고 강희제가 만든 주접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곳곳에 자신의 밀정을 파견하고 관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게 했으며, 민심의 동향을 살폈다. 아울러 지방관들에게도 주접을 쓰게 하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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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천하의 모든 일을 황제 한 사람이 책임지고 처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옹정제는 이 불가능한 정치를 실현했다. 실제로 옹정제가 어떻게 국사를 처리했는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는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나 밤 10~12시까지 쉴새없이 일했다.(본문 125~127쪽 참조) 강희제는 종종 사냥도 나가고 또 장기간 지방을 순행하기도 했지만, 옹정제는 재위 13년 동안 단 한번도 베이징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천명이 부여한 임무를 다하기 위해 몸이 으스러지도록 국사에 전념했다. 그래서 신하들의 불필요한 알현 신청은 언제나 거절하고, 용건이 있으면 편지를 하라고 했다. 또 자신을 위해서는 궁전의 방 한 칸도 늘리지 않았다. 지방관이 하례장을 올리면서 비단을 사용하면 왜 이런 낭비를 하느냐고 하면서 종이를 쓰게 했다. 그야말로 옹정제는 성실과 근면의 화신이었다.
옹정제는 기본적으로 관료란 사무를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 따라서 관료가 한가하게 문인취미에 젖어 있거나 축재에 관심을 갖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사회의 특권계급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들었다. 황제제도에서 특권이란 오직 황제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며, 황제 이외의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 옹정제의 신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옹정제는 천민을 해방시켰고, 지방관들에게는 전례없는 근무지수당을 지급했다.(이것을 청렴함을 기르는 돈이라 하여 '양렴은'[養廉銀]이라고 한다.) 그러나 옹정제식의 정치는 옹정제가 아니면 할 수 없었다. 무쇠라도 견디지 못할 엄청난 양의 국사를 처리하던 옹정제가 죽자 청조의 정치는 다시 강희제식의 관대한 정치로 돌아갔다. 옹정제가 살아 있는 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기득권세력들의 불만이 다시 표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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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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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는 중국 역사상 그 누구도 감히 손대지 못했던 중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에 과감히 개혁의 칼을 들이댔다. 그리고 13년 동안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그의 사후 다시 과거의 정치로 돌아가긴 했지만 옹정제의 개혁 덕분에 청조는 적어도 1세기 동안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그러면 왜 옹정제식의 정치는 계속될 수 없었을까? 옹정제가 아무리 선의의 정치를 했다 해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독재군주에 의한 철저한 독재정치였기 때문이다. 옹정제식의 독재정치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정치인 것이다. 그러나 옹정제가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독재정치도 잘만 하면 좋은 정치가 될 수 있다는 따위의 역설이 아니라, 선의의 독재가 낳은 역효과이다. 다시 말해서 선의의 독재를 경험한 대중은 독재에 길들여진다는 사실이다. 역사에서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다. 왜냐하면 독재를 신뢰하게 된 대중은 독재가 아니면 다스려질 수 없도록 틀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옹정제의 정치는 한마디로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였다.
저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역사학자 미야자키는 1901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나 1995년 타계했다. 교토(京都) 대학 문학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생을 교토대학 교수로 있었으며, 1960년과 1965년 사이에는 파리·하버드·함부르크 대학에 객원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중국사의 거의 모든 분야와 서아시아사에 걸쳐 방대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九品官人法の硏究>, <科擧>, <アジア史硏究> 1-5, <論語の新硏究>, <水滸傳> 등 다수가 있으며, 1991년에는 모든 그의 저작을 한 데 모은 <宮崎市定全集>(전24권)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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