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10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 주원준 옮김
1999년 8월 3일 발행 / 416쪽 / 값 20,000원
*문화관광부 1999년 추천도서

독특한 삶을 산 한 인간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마테오 리치의 결정적인 전기인 동시에 16세기 동서양의 문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빼어난 세계사책이다.



전기 형식을 띤 독특한 역사책 
16세기 후반, 유럽인들은 첫번째 해상탐험의 시대를 마쳤다. 이제 상인들과 전교사들은 새 시장과 새 영혼의 수확을 위해서 극동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이 여행자들 가운데 특출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마테오 리치였다. 그는 1577년 고향 이탈리아를 떠나 인도를 거쳐 중국에 들어갔고, 1583년에서 1610년까지 거기서 일했다. 
감동적이고 종교적인 한편의 대하드라마 같은 리치의 특별한 생애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은이는 평범한 전기 기술의 방법을 탈피하여 리치의 생애를 리치 자신이 창조했던 여러 가지 이미지(像)와 연결시킨다. 이리하여 지은이는 이탈리아, 인도, 중국에서의 리치의 삶을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명대 중국과 반종교개혁기의 유럽을 대비시킴으로써 지적, 사회적, 군사적, 해상무역의 세계사적 역작을 탄생시켰다. 리치가 자신의 책에서 묘사하려고 했던 기억의 궁전은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안에서 리치의 삶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잊혀졌던 세계의 희망과 공포를 보여주는 은유이다. 
<마테오 리치,기억의 궁전> 들여다보기 
지은이는 기억법, 곧 기억의 궁전을 짓는 법(1장)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기억의 궁전은 리치가 중국인에게 기억술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책인 <기법>(記法)에 기초해서 짓는다. 리치는 기억의 궁전을 지으면서 궁전 안 연회실의 네 모퉁이에 대표적인 네 개의 이미지를 세워두었다. 그것은 한자(漢字)로 武, 要, 利, 好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은이는 <정씨묵원>(程氏墨苑)이라는 책에 나오는 리치가 고른 4장의 그림을 리치의 삶을 재구성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로 선택했다. 그것은 성서 속의 이야기를 묘사한 <파도에 빠진 사도>, <엠마오로 가는 길>, <소돔의 남자들>, <성모자 성화>이다. 지은이는 이 네 개의 이미지와 네 장의 그림을 마치 슬라이드처럼 번갈아 보여주면서 리치라는 인물과 16세기 동서양이라는 대조적인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2장 '두 명의 전사'는 '武'의 기억용 이미지다. 武자를 대각선 방향으로 나누면 창 '과'(戈)와 그칠 '지'(止)가 된다. 따라서 武는 전쟁과 평화를 모두 함축한 글자인 것이다. 그러면 왜 리치는 武를 생각했을까? 16세기의 서양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 이슬람 세력과의 대결 등으로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 중, 일 3국이 대 전란에 휩싸였다. 이런 혼란기일수록 평화에 대한 갈망도 클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리치가 창조한 '武'의 이미지에서 그것을 본 것이다. 
3장에 나오는 '파도에 빠진 사도' 그림은 험난한 해상여행을 암시한다. 여기서의 사도는 베드로이다. 당시 세계의 바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양분하고 있었다. 제해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력다툼의 역사와, 바다를 항해하는 이야기가 3장 전반부의 내용이다. 리치는 리스본에서 배를 타고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마카오까지 왔다. 그 여행은 마치 물에 빠진 사도 베드로처럼 믿음을 시험받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3장의 후반부는 중국의 내륙수로를 다룬다. 중국이 바다로 진출하지 않고 내륙수로, 곧 운하교통에 집중한 점을 리치의 눈을 통해 관찰하고, 운하여행이 바다여행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리치의 경험을 통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4장은 두번째 이미지 '후이후이'(回回)족이다. 후이후이족 여성은 '要'의 기억용 이미지다. 要를 위 아래로 나누면 '西女', 곧 서쪽의 여인이 된다. 지은이는 이를 통해 리치의 눈에 비친 중국의 서양인, 서양의 문화, 서양의 종교를 이야기한다. 당시 중국 서역에는 이슬람 교도가 많이 살고 있었고,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 교도(景敎徒)와 심지어 유대교도까지 있었다. 리치는 이 서양의 3교가 유교, 불교, 도교가 뿌리를 내린 중국에서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동서양의 종교와 문화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했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와 가장 유사한 교의를 가진 중국의 종교로 유교를 주목하여 스스로 유학자의 옷을 입고, 유학자들과 친분을 맺었으며, 유학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런 언행이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리치는 자신을 '기인'(畸人), 곧 '역설적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5장에서는 두번째 그림 <엠마오로 가는 길>을 통해 리치가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 마치 두 사도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엠마오로 갔듯이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더듬어간다. 그런 점에서 5장은 압축된 리치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단순한 연대기적 사실이 아니라, 과연 리치가 중국에 전한 서양의 문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 하는 점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리치가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받은 내용을 아주 상세히 기술한다. 이것은 리치가 중국에 서양문화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5장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그리스도교와 서양의 학문이 소개된 것도 리치의 저작을 통해서였던 만큼, 조선 후기의 서양인식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 가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6장은 '利'의 장이다. '利'를 좌우로 나누면 곡식을 뜻하는 '禾'와 칼을 뜻하는 '刀'가 된다. 그래서 리치는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를 기억이미지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 '利'는 경제행위와 직결된다. 6장은 바로 16세기의 경제 이야기이다. 앞부분에서는 무역, 구체적으로 비단무역이나 은의 유통 같은 당시의 세계경제가 하나의 배경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문제, 리치는 어떻게 먹고 살았는가라는 의식주의 문제를 다룬다.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중국에 온 리치이지만 그도 종교와 경제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유능한 재정관리자로 변해 간다. 리치는 전교 초기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절히 기부금을 받고, 재정을 잘 운용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한 모습을 중국인에게 보여주었다. 또 리치는 중국의 관리나 지식인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임을 알고 많은 선물을 했으며, 황제에게도 많은 선물을 바치고 마침내 베이징에 정착할 수 있었다. 한편 돈벌이를 하지 않는 리치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일부 중국인들은 리치가 전교사가 아니라 은을 만드는 연금술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는 리치의 양면적인 모습, 곧 종교인의 모습과 실리적인 인간의 모습을 다 보여주는 일화이다. 
7장에는 <소돔의 남자들>이란 그림이 등장한다. 타락한 도시 소돔이 멸망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이 그림을 통해 리치는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중국인에게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부도덕한 행위란 성(性)적 문란을 의미한다. 지은이는 16세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연했던 매춘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 죄악시했던 '동성애'에 대한 내용은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재미있는 예를 들면, 사내 '男'자에서 힘 '力'자 대신 계집 '女'를 붙인 '기'자가 있다. 이 글자는 저장(浙江) 지방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동성애, 비역을 뜻한다. 저장성은 16세기 이전부터 동성애가 가장 많았던 지방이었다고 한다. 
8장에선 네번째 이미지 아이를 안은 여자, 곧 '好'와 네번째 그림인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 곧 성모자 성화가 제시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리치 자신이 성모신앙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중국인이 '십자고상'(十字苦像)보다 성모 성화나 성모자 성화에 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밖에 리치의 불교 비판이나 명 말의 사상가 리즈(李贄)와의 만남, 그리고 리즈의 죽음을 다룬 부분은 아주 흥미롭다. 이 책은 리치가 자신이 세운 기억의 궁전의 문을 닫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러나 그 기억의 궁전은 오랫동안 독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겨 줄 것이다. 리치가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겼듯이.


저자 조너선 D. 스펜스(Jonathan D. Spence)

예일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Sterling Professor)이며 현재 미국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다.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윈체스터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9년 예일 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1965년에 역사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구겐하임 펠로우쉽, 맥아더 펠로우쉽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예술과학원과 미국철학협회 회원이다. 역사와 문학을 결합한 그의 독특한 역사서술방식은 연구자를 비롯한 일반 독자 모두를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쓴 책으로는 The Death of Woman Wang, <천안문>,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God's Chinese Son 등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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