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 24 리오리엔트

리오리엔트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 이희재 옮김
2003년 2월 21일 / 본문 608쪽 / 값 25,000원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2004우수학술도서 *한국출판인회의 선정 이달의책
프랑크는 기존의 역사서술과 사회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며, 유럽중심주의에 함몰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와 현대경제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서구의 발흥과 세계체제의 기원에 관해 근본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역작. 

서양 지성계에 일대 충격을 가한 프랑크 필생의 역작
1980년대 초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의 뇌리에는 안드레 군더 프랑크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 붐을 일으킨 진원지 가운데 하나였던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로, 더러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론'에 적잖은 기여를 한 인물로. 그러나 그뿐이었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이름은 그를 기억했던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희미해져 갔다. 그런 바로 그가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필생의 역작을 완성했다. <리오리엔트>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에 '아시아 시대의 글로벌 경제'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서양 지식인 사회를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 놓았고, 비유럽 지역, 특히 중국·일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우리나라에서도 이민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역사비평> 2002년 여름호에 '세계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유럽중심주의 사관의 극복을 위하여'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이 책을 소개하고 그 의의를 논한 바 있다.) 지난 150년 동안 철옹성이나 다름없던 서양 근대 학문의 역사서술과 사회과학이론을 가차없이 깨부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베버 같은 고전적인 이론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날학파의 거장 페르낭 브로델, '근대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문명의 충돌'을 주장하는 새뮤얼 헌팅턴까지 그의 비판에는 성역이 없다. 심지어 그는 자기비판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서양의 역사학과 사회이론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
프랑크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고 배우고 있는 세계사는 19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에 의해 쓰였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보편적 사회과학이라는 것 역시 단순히 유럽중심적 발명으로서 새롭게 탄생되었다고 지적한다. 즉 유럽적인 역사가와 사회이론가들이 유럽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발명한 이데올로기가 유럽중심주의라는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후반 이후 오늘날까지 유럽 또는 서양의 패권을 재생산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버팀목 역할을 해 왔을 뿐 아니라 식민지배를 통해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이 유럽중심주의의 뿌리를 찾아 나선 프랑크는 근대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과학자들의 시각 속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럽의 내재적 특징이 세계의 나머지 지역과는 다른 예외적인 유럽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확신한다.
마르크스는 유럽만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맹아를 갖고 있었고,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대표되는 아시아는 정체성이 고착화되었으므로 여기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유럽으로부터 진보의 수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의 피와 살이라고 하면서 유럽 이외 지역의 종교는 모두 신화적이고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한마디로 반(反)합리주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말에 따르면 합리적 정신이라는 효모를 가진 '서양'은 발흥했고, 그것을 결여한 '나머지 세계'는 그러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유럽의 역사가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시야가 넓다고 할 수 있는 페르낭 브로델 같은 역사가마저도 "중국이 낙후된 것은 이슬람이나 서양보다 덜 발달된 경제구조 때문이었다. 중국의 기업가들은 이익을 내는 데 열성적이지 않았다. 서양 자본가의 정신자세에 비하면 그들은 어설펐다"고 부정확한 서술을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프랑크는 자기 자신과 학문적 동지였던 월러스틴에게도 비판의 메스를 가한다. " 월러스틴과 나 두 사람 모두 근대 '세계'경제/'세계'체제의 구조와 과정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모델화하는 데 주력했다. 월러스틴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 당시 이 체제의 중심부가 유럽이며 그 중심부가 점점 확대되면서 나머지 세계가 유럽에 기반을 둔 '세계'경제로 통합된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월러스틴/프랑크 이론의 한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럽인은 지리학도 발명했다. '유라시아'라는 말 자체가 유럽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의 일개 반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유럽인은 유럽중심적으로 '역사의 진전'을 지도상에 표현해 왔다. 예컨대 메르카토르 도법에서는 조그마한 섬나라 영국이 인도만큼 크게 그려진다. 또 지리학적 사실과는 반대로 유럽 반도를 한사코 대륙으로 격상시키면서, 인구가 훨씬 많은 인도는 겨우 아대륙(亞大陸)이고, 중국은 그저 '나라'(國)라고 한다.
이처럼 뿌리깊은 편견을 분쇄하려면 글로벌한 관점에서 단일한 세계경제체제의 현실을 분석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프랑크의 논지이다. 부분의 합 이상인 전체를 분석하지 않고서는 유럽이라는 부분을 포함해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본 아시아 시대의 세계경제
프랑크는 유럽의 세계지배는 1800년 이후 지금까지 길어야 200년 남짓 이어진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단언한다.
"근대 유럽의 경제성장은 유럽 스스로 달성한 것도 아니고, 합리성, 제도, 기업가 정신, 기술, 온난한 기후, 한마디로 유럽인이라는 인종의 유럽'예외주의'로 이룩한 것이 결코 아니며, 1800년 이전의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중요하지도 앞서 있지도 않았다. 만약 1800년 이전에 세계경제에서 우세한 지위를 점한 지역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시아였다. 당시 세계경제에서 '중심적' 지위와 역할이 있었고 '여러 중심' 중에도 서열이 있었다면 그 정점에는 중국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유럽은 오래 전부터 아시아의 풍부한 물산과 양질의 상품에 눈독을 들였다. 유럽 국가들이 대양항로 개척에 혈안이 되었던 것도 비단, 면직물, 도자기, 향신료, 차 같은 아시아 상품을 항시적으로 입수할 수 있는 안전한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신대륙 발견을 통해 유럽에 은이 굴러들어 오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화폐도 부족하고 아시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변변한 물건도 없어서 아시아 상품을 마음껏 구입하지 못했다. 은은 이런 유럽의 갈증을 풀어 주었다. 유럽은 "신대륙의 은으로 아시아 경제라는 열차에 오르는 승차권을 샀던" 것이다.
유럽은 대(對)아시아 무역에서 만성적인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은으로 그 적자를 메웠다.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은의 태반은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은이 없었다면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명함도 못 내밀 신세였다. 영국이 훗날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에 수출한 것도 딱히 팔아먹을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제품은 아시아 제품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으므로 식민지가 아닌 곳에서는 잘 먹혀들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는 기술력, 생산력, 품질 면에서 유럽을 압도했다. 프랑크에 따르면, 유럽인 특유의 합리성이라는 내재적 특성 덕분에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혁명을 통해 유럽이 산업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결국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갓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가 대표하는 아시아의 과학기술 수준은 적어도 1800년까지는 유럽에 뒤지지 않았고 오히려 유럽을 능가했다. 1800년을 고비로 상황이 역전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전까지 아시아의 경쟁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풍부한 물산과 수준 높은 농업기술이 있었고 인구가 풍부하다 보니 자연히 노동비용이 저렴했다. 이것은 상품의 경쟁력으로 직결되었다.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에 의해 아시아에서도 발명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노동절약적인 기계를 개발하는 기술혁신보다는 노동력을 추가 투입하는 쪽이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었다. 반면에 유럽은 인구가 적었던 데다가 식민지의 확대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인구/토지자원 비율이 아시아보다 훨씬 낮았고, 이것은 고임금/고비용 생산구조로 이어졌다. 유럽은 노동절약적 기계를 만들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기계를 발명한 것은 과학자가 아니라 주로 현장 기술자였다. 바로 이들에 의해 산업혁명의 막이 올랐고 유럽은 이때부터 경쟁력의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자들은 이런 글로벌한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합리성, 기업가 정신, 기술혁신 등을 모두 유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예외적 현상으로 평가하고 유럽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크는 강력히 비판한다. 유럽이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가 유럽을 만들었다"고. 유럽의 발흥은 유럽의 내적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시아는 세계사의 대부분 기간 내내 주변에 머물러 있던 유럽이 아시아에 가져다준 것보다 훨씬 많은 경제적·기술적·문화적 혜택을 유럽에 안겨주었다. 이를 두고 프랑크는 재미있는 비유를 한다.
"유럽은 아시아 경제라고 하는 열차의 3등 칸에 달랑 표 한 장을 끊어 올라탔다가 얼마 뒤 객차를 통째로 빌리더니 19세기에 들어서는 아시아인을 열차에서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동양으로―다양성 속의 통일성
동양이 세계경제의 사이클에서 하강국면(1750년 이후)으로 접어들었을 때 서양 각국은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면서 수출증대에 주력하여 요즘으로 치면 신흥공업경제지역(NIEs)으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그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크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아시아가 금융위기를 겪긴 했지만 중국과 미국의 경제전쟁에서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더 유리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도 호락호락 자리를 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동아시아는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경제와 세계무역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만큼 21세기에도 당연히 그런 비중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비록 1800년에 멈추기는 했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누렸던 우위를 되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경제발전이 단단한 역사적 기반을 갖고 있음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동시에 우리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서 더 큰 자신감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크는 단순히 아시아의 재부상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중심주의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종중심주의나 자민족중심주의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패권을 가진 중심이 주도하는 일방적 질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지역이 평등하게 교류하면서 공존하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인류 보편의 이상이다. 그래서 프랑크는 자신의 책이 그런 이상에 단 몇 사람이라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저자로서 더 없는 보람으로 여길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저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

1929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941년 나치 정권을 피해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57년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까지 미시건 대학에서 강사와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라틴 아메리카로 가서 브라질리아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며 인류학을 가르쳤다. 1965년에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내 국립경제학교 특임교수가 되었고, 1966~1968년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조지 윌리엄스 대학의 경제학과와 역사학과 객원교수를 지냈다.
1968년에는 칠레 산티아고 소재 칠레 대학 경제학부와 사회학과 교수로 아옌데 정부의 개혁에 관계했다. 1973년 칠레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유럽으로 탈출, 이듬해부터 1978년까지 독일 슈타른베르크 소재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교수로 근무했다.
1978년 다시 독일을 떠나 영국 노리치로 가서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내 발전연구학교 교수가 되었다. 1981년부터는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발전경제학 및 사회과학 교수를 겸임했다. 65세가 되던 1994년 암스테르담 대학 경제학부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여러 대학의 객원교수로 일했으며, 현재는 미국 보스턴 소재 노스이스턴 대학 세계사센터 원로교수이다.
1999년 세계사학회가 수여하는 '으뜸저작상'을 받았으며, 이 책 <리오리엔트>는 2000년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상을 수상했다. 수많은 연구서와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저작은 '종속이론'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저발전의 발전>(1969)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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