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에서 10세기까지 약 250년 동안 최대의 번영을 구가하던 실크로드와 영욕을 함께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엮어내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실크로드 인물열전
역사와 문학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식의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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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형식이 독특하다. 굳이 기존의 역사서술 방식으로 비유한다면 통사(通史)와 열전(列傳)을 결합시켰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은 역사서임에는 틀림없지만, 구성 자체가 대단히 문학적이다. 맨 앞과 맨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는 것이 그러하고, 또 10명의 각기 다른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앞사람의 이야기가 다음 번 사람의 이야기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때로는 앞사람과 뒷사람의 인생이 절묘하게 교차되기도 하면서 250년의 실크로드 역사를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그래서 독자들은 실크로드나 유목민족 또는 중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어렵지 않게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연작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동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다른 중국 역사서나 실크로드 관련서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했던 여성의 삶을 완벽하게 역사화했다는 점이다. 개중에는 우리의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내용도 적지 않다. 예컨대 당시 법률에 합의이혼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과부의 재혼도 허용되었다. 19세기의 노라보다 무려 1천년이나 앞서서 먼저 당나라의 한 여인은 자기 성격상 도저히 시집살이는 할 수 없다며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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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무대로 살아갔던 10인의 열전(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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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8세기 중반에서 10세기 말까지 약 250년간의 실크로드 역사를 다룬다. 이 기간은 실크로드가 동서 육상 교역로로 가장 번영을 누렸던 시기이며, 중국사에서 당대(唐代)와 거의 일치한다. 지은이는 이 250년이라는 시간과 중앙아시아 및 중국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결합시켜, 그 안에서 명멸해 간 10명의 인물과 그들의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통해 실크로드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데, 그 치밀한 구성과 극적인 재미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역사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유는 철저하게 사료에 바탕을 둔 사실성(史實性)과 객관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프롤로그'에서 잘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지은이는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크로드의 전사(前史), 곧 8세기 이전 유목민족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열 사람의 이야기가 각각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전개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 명의 주인공은 대부분 둔황 문서나 지난 수십년 사이에 발견된 자료들에서 발굴해 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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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마르칸트와 당나라 수도 장안을 오가며 장사하는 낭만적인 상인 나나이반다크(730-751).
2. (적군의 장수인) 고선지 장군의 무용담을 후배 병사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티베트 병사 세그 라톤(747-790).
3. 중국에 팔 조랑말 떼를 몰고 다니는 목부(牧夫)였으나 티베트와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전사한 위구르인 쿰투그(790-792).
4.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 투르크(돌궐) 카간에게 시집가는 당나라 목종(穆宗)의 누이 태화공주(821-843).
5. 중국 우타이(五臺) 산으로 순례여행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장안에 도착하는 카슈미르의 승려 춧다(855-870).
6. 기생이 되어 군대를 따라 전전하다가 장안에서 생활하던 중 그만 황차오(黃巢)의 난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향 쿠차로 돌아간 금발의 기생 라리슈카(839-890).
7. 어린 나이에 불가에 귀의하여 승방 주지로 생을 마감하는 둔황의 비구니 먀오푸(880-961).
8.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묵묵히 인생의 고통을 감내하는 둔황의 과부 아룽(888-947).
9. 역법(曆法)에 조예가 깊고 불심이 돈독해 뭇사람들로부터 칭송을 얻은 둔황의 관리 자이펑다(883-966).
10. 둔황 석굴을 장식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가 둥바오더(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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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열 명의 인물들은 결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이 아니다. 온갖 세파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힘겹게 일생을 산 보통사람들이다. 공인된 역사가 "승리자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라고 한다면 실크로드 주변의 역사는 중국사의 일부가 되거나 아니면 주인 없는 역사가 되어버리고 말겠지만, 지은이는 20세기의 100년 동안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과 연구성과를 집약하여 공인된 역사에서 잊혀진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실크로드의 진정한 주인이며, 이들의 삶이야말로 참다운 역사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이고 여성들의 머리모양, 신혼부부의 첫날밤 풍경, 결혼풍습, 사막에서 말과 낙타의 중요성까지 그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의 물질생활의 밑바탕에는 그것을 지탱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바로 종교가 그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실크로드의 교역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값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8세기~10세기) 실크로드 주변에는 많은 종교―불교·이슬람교·조로아스터교·마니교·네스토리우스교 등―가 있었지만, 단연 돋보이는 종교는 불교였다. 우리의 불교 신앙도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을 생각한다면 당시 불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지은이는 독자들이 시대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의 제도와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설명을 적재적소에 삽입시켜 흥미를 더한다. 저 유명한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비롯하여, 안루산(安祿山)의 난, 황차오(黃巢)의 난, 많은 정복전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조세제도, 사법제도, 토지소유관계 등을 빠짐없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고구려인의 후손으로 당나라 최고의 장군이 된 고선지(高仙芝)―지은이는 고선지를 'Korean'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의 무용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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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눈으로 본 고선지 장군의 지략과 용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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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년 여름. 당나라는 티베트와 왕조의 운명을 건 일전을 벌인다. 그때까지 당나라는 티베트와 싸워서 거의 이겨 본 적이 없었다. 고선지는 중국군 최고사령관으로서 1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험난하기로 유명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와한 왕국과 소발루르 왕국을 정벌했다. 이 정벌을 전쟁사가들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은 것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고선지 장군이 중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장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지략과 용맹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책에도 자세히 나와 있지 않은 고선지 장군의 영웅적인 활약상이 당시의 전투상황도와 함께 마치 <삼국지>의 '적벽대전' 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지은이는 고선지 장군이 이 전투의 승리로 일약 당나라의 영웅이 되었으며, 적군인 티베트 병사들마저 그를 우러러보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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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실크로드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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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주변에는 수많은 유목민족이 꽃피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비록 중국의 정사(正史)는 중국문화가 제일이며 나머지 문화는 야만적인 것으로 폄하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화이사상(華夷思想)의 산물이다. 실제로 실크로드 주변의 유목제국들은 당나라와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전쟁이 벌어지면 유목제국들은 오히려 당나라를 제압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위구르는 당나라로부터 조공을 받기까지 했다. 지은이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화이사상은 중국의 전통적인 역사 서술상의 고정관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실크로드의 역사에 덧씌워진 중국 변방의 역사라는 굴레를 벗겨내고 실제로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향유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려준다.
실크로드 변의 수많은 도시국가들 가운데 하나였던 둔황도 마찬가지다. 흔히 둔황 석굴의 미술을 중국 왕조의 이름을 붙여 무슨무슨 나라의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지은이는 둔황미술은 둔황사람들의 업적임을 강조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둔황의 화가 둥바오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로 끝을 맺는다.
"둥바오더와 같은 시대에 송나라 수도인 장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위대한 실크로드로의 전성기를 망각하고, 자신들이 실크로드의 예술과 문화에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둔황을 기껏해야 변방의 침체된 시골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았다. ……오늘날 내로라하던 송대(宋代) 화가들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 사라졌다. 반면 둥바오더와 동시대의 실크로드 화가들은, 이름은 잊혀진 지 오래지만 작품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고 있다!"
저자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
영국 도서관(British Library)에서 국제 둔황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일하는 둔황학자이다. 현재 전세계에 흩어져 남아 있는 5만 여점 이상의 11세기 이전의 실크로드에서 발견된 필사본을 인터넷에 제공하고 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둔황학자들간의 국제적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The Legend of the Chinese Zodiac; Dunhuang and Turfan: Contents and Conservation of Ancient; China: A Literary Companion(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북리뷰
| 제목 | 게재지 | 글쓴이 | 날짜 |
01 | 실크로드, 그 화려했던 순간 | 한겨레21 | 구본준 |
200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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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비단길서 250년간 살았던 10인 이야기 | 문화일보 | 최영창 |
200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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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 비단길에 새긴 절절한 인생 | 한국일보 | 오미환 |
200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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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인물따라 풍속따라 '실크로드 속살 여행' | 세계일보 | 조용호 |
200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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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 다양한 인물 군상들로 엮은 '실크로드' | 조선일보 | 민병훈 |
200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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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 열 장의 몽타쥬로 본 비단길 역사 | 한겨레신문 | 김기협 |
200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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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 '비단길'에 깔린 다양한 민족의 삶 | 중앙일보 | 배영대 |
200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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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 비단길 전성기 10人을 만난다 '실크로드 이야기' | 동아일보 | 정찬주 |
200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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