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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 2000년 우수학술도서
문화대혁명 때 농촌에 하방되어 9년간 농민이었던 지은이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중국혁명의 사회역사적 원인과 오늘날 중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실증적으로 치밀하게 파헤친 자기성찰적 연구서.
"중국은 더 이상 몽환적이고 평온하며 현실 도피적인 중세의 '전원시'를 읊조리지 말고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현대화의 '광시곡'을 창조해야 한다."
중국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
중국은 20세기에 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격렬한 변화와 혁명을 경험한 끝에 인민공화국을 수립했고,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특히 1980년 이후, 과거에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적극적이고 저돌적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른바 '현대화'로 표현되는 이 변화는 12억 중국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현대화'로 인해 사회주의 혁명 이후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과거 봉건사회의 잔재가 한꺼번에 떠올라 중국은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말들이 바로 '관시'(關系), '다궈판'(大過飯)공동체, '철밥통'(鐵飯碗)이다. '관시'란 능력이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회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연·혈연·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됨을 말하며, '다궈판'은 원래 "큰 가마솥에 밥을 지어 다 함께 나눠 먹는다"는 평균주의를 뜻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것을 국가에 의존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체질을 비유한 말이다. '철밥통'은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밥그릇을 의미하는데, 일단 직업을 얻으면 전직이 불가능한 대신 일을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승진되는 관행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현대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총력을 경주하는 중국사회에 왜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비능률적인 전근대적 행태가 만연하게 된 것일까? 지은이는 바로 이런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역사와 현실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중국은 12억 인구 가운데 9억이 농민이니 농민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령 언젠가 중국 인구의 대부분이 농민이 아닌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현재의 감소 추세라면(1981년과 1985년 사이에 불과 0.3% 감소했다), 그것은 언제가 될지 모를 아주 먼 훗날일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중국 문제는 농민문제로 직결되고, 농민문제가 다름 아닌 중국문제라고 단언한다.
지은이는 과거 중국 봉건사회의 특징들이 중국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발전, 곧 '현대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본다. 봉건사회의 특징은 자연경제에 바탕을 둔 명령경제(흔히 경제외적 강제라고 말한다), 가부장적인 종법공동체, 인신예속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특징들은 농민의 농촌공동체에 대한 속박과 의존을 강화함으로써 농민이 자유로운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공동체의 수장―넓게는 황제나 국가 원수에서 좁게는 촌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개념에 포함된다―에게 의존하여 평균적인 삶을 사는 데 최고의 가치를 두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는 인정(人情)은 많을지 몰라도 인성(人性)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종법공동체에서는 극빈자·불구자·노인·병자 같은 약자에게는 한없이 온정을 베풀지만 자유를 찾는 사람이나 개성이 강한 사람에게는 인간 이하의 가혹한 처벌을 가한다. 또 사유(私有) 관념보다 공유(公有)관념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공과 사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진다. 뿐만 아니라 잘 살든 못 살든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사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기 때문에(물론 특권을 가진 공동체의 수장과 극소수 권세가들은 예외이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질투병이 만연한다. 종법공동체의 성원들은 특출난 사람을 보면 자신도 노력해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보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약점을 잡아서 헐뜯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법공동체의 병폐들은 중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서구 봉건시대 농민 역시 공통적으로 지녔던 특징이다. 하지만 농촌공동체가 분해되고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중국과 서구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서구 농민은 기회를 찾아 도시로 왔고 그 전제조건은 경쟁에 뛰어들 마음가짐과 능력에 대한 준비였던 반면, 중국 농민의 도시 이주는 도시에만 주어지는 특별한 국가의 혜택―현재 중국에서는 농민의 도시 이주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도시인만이 의료보험혜택을 받고 있다―을 받기 위한 것이며, 그 전제조건은 반드시 '관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 개의 관청 직인(職印)이 한 명의 고향 사람만 못하고", "안면이 도장보다 더 효과가 큰" 현상과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관시망'이 온 중국을 뒤덮게 되었다.
지은이는 개인 숭배와 질투병이 극에 달했던 문화대혁명이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시작되고 학력이 낮은 사람보다 학력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광적으로 진행된 것도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인 계약이나 공정한 경쟁 또는 자유나 민주를 말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지은이의 관점에서 볼 때 종법 농민이 주력을 형성한 러시아·중국·베트남·북한 등지의 '20세기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농민 사회주의(인민주의)이며 그 본질은 봉건주의이다.
대안은 없는가
만약 위와 같은 중국 현실사회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연·학연·혈연 등 온갖 연줄이 중국 못지않게 판치는 우리에게 정말 값진 교훈이 될 것이다. 정치적·경제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관시'와 우리의 지역감정이나 연줄 찾기는 거의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중국의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관행들이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극성을 부리는 원인은 봉건시대 농촌의 종법공동체가 제대로 해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과거 왕조시대의 균전제(均田制) 전통과 인민공화국 수립(1949) 이후 농민의 토지 사유를 극도로 억압한 결과 종법공동체는 인민공사 체제속에 온존하게 되었고 종법농민의 집단심리(한편으로는 수장의 보호를 기대하는 의존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제멋대로 하는 방만성) 역시 그대로 이어져 왔다. 말하자면 소생산자 농민의 사욕(私慾)을 죄악시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로운 개성발전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신좌파이론에 편승한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반이성(反理性)과 근대 비판에 열중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또 다른 전제(專制)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좌파 이론가들이 이성의 과잉으로 인한 서양사회의 부정적 현상들―예를 들면 과학만능주의, 인간소외, 환경파괴 등―을 비판한다거나 그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사상(특히 신비주의적인 노장사상)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중국은 서양과 달리 이성과 합리성이 부족해서 문제인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의 전통사상이 마치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것처럼 우쭐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중국에 필요한 것은 근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의 성과를 진지하게 검토하여, 인간의 개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키고 누구나 개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 같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노력이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중국의 빈부격차가 문제인 것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전적으로 '관시'를 통해 치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역사를 단계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부르주아 혁명이든 사회주의 혁명이든 그 핵심은 종법공동체를 타파하여 종법농민을 독립된 자유인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부르주아 혁명은 종법공동체를 성공적으로 해체했지만 사유제를 극단적으로 추구하여 인간소외를 낳았고(예컨대 미국과 서구), 사회주의 혁명은 사유제 폐지에만 열중한 나머지 종법공동체를 온존시키는 우를 범했다.(예컨대 소련과 중국처럼 농민사회주의를 추구한 나라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사회주의 현대화'는 장기적으로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고 사회주의의 장점을 살린, 바꿔 말하면 자본주의의 장점을 수용하고 사회주의의 단점을 폐기한 '사회주의 자유인 연합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저자 친후이·쑤원(秦暉·蘇文)친후이는 1953년 중국 광시(廣西) 성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아버지가 지식분자라는 이유로 농촌에 하방되어 9년간 농사를 지었다. 란저우(蘭州) 대학의 대학원에서 중국경제사와 사회사를 전공한 후 산시사범대학(陝西師範大學) 역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베이징의 칭화(淸華)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밭가는 자의 말: 농민학 문집>, <문제와 주의: 친후이 문선> 등이 있다.쑤원은 1954년 중국 시안(西安)에서 태어났다. 란저우 대학 외국어학과(러시아어 전공)와 대학원 역사학과(소련·동유럽사 전공)를 졸업한 후 산시사범대학 역사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친후이의 부인이며,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편역국(中央編譯局) 세계사회주의연구소 러시아연구센터 연구원이다. 저서로 <농촌코뮌, 개혁과 혁명> 등이 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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