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11 그림 속의 그림

그림 속의 그림
우훙 지음 / 서성 옮김 / 1999년 10월 8일 발행
컬러화보 24쪽, 328쪽 / 흑백 170컷, 올컬러 20컷 / 값 15,000원

'중국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중국 고대 화상석에서 10세기 남당(南唐)의 세 대가 구훙중(顧 閎中), 저우원쥐(周文矩), 왕치한(王齊翰)의 인물화, 산수화와 문인화, 청대의 미인도에 이르기까지 그림 속의 그림으로 떠나는 시각여행.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아주 특별한 시각여행
이 책은 중국 미술사가라면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주제, 곧 '중국화란 무엇인가'라는 일반적인 주제를 화두로 삼고 있지만, 그 내용은 지은이 우훙만의 독특한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신선하다. 지은이는 베이징 고궁박물원(과거 중국의 황제들이 살았던 자금성)에서 1973∼1980년까지 큐레이터로 일했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방문객들이 박물원의 몇몇 건물과 그 안에 진열된 유물들을 자유로이 구경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화혁명의 상흔을 애써 지워가던 그 시기에 지은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행운'이라고 할 만큼 큰 복이었다. 
더욱이 그 당시에, 그가 다녔던 베이징 중앙미술대학에서는 미술사 분야의 학생을 더 이상 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훙은 고궁박물원에서 일자리를 얻은 덕분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또 베이징의 만성적인 주택 부족은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과거 황제의 호위병들이 기거하던 작은 공간에서 몇몇 박물원 직원들과 공동 생활을 하면서 중국의 전통세계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매일 저녁 9시가 되면 자금성은 육중한 문을 닫았다. 그러면 성 안에서는 창호지를 바른 창문을 뚫고 옛 왕조의 분위기가 한기를 느낄 만큼 뿜어져 들어왔다. 그러나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이 책 <그림 속의 그림>을 잉태할 수 있게 했던 것은 바로 수백 년 이상 된 예술작품―그림과 서화, 엄청난 규모의 청동과 석각 등―을 매일 같이 직접 대면했기 때문이다.

병풍을 통해 본 중국화
우훙은 "(전통) 중국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많은 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해 회화 이미지와 회화적 표현만을 분석함으로써 부분적인 대답만을 해왔다는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다른 중국 미술학자들은] '회화 형태, 그림을 보는 행위, 그리고 직접 다루는 것'을 간과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이런 확신은 하버드 대학―우훙은 여기서 미술사와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시카고 대학으로 옮길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에서 더욱 깊어졌다. 
그는 애당초 베이징에서 연구했던 <한시짜이의 밤잔치>(韓熙載夜宴圖)라는 두루마리 그림을 주목하여 행위와 문화가 어떻게 그림의 물질적 형태를 결정하는지를 고찰했다. <한시짜이의 밤잔치>는 남당(南唐, 937∼975)의 한 고위관료의 악명 높은 주연(酒宴)을 묘사한 것이다. <밤잔치>는 우훙이 <그림 속의 그림>에서 예로 든 남당의 궁정화가 세 명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데, 세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중국에서 2천 년 이상을 가구, 회화매체, 시각적 모티프로서 사용해 온 병풍이 이미지로서 등장한다. 스스로 "병풍은 뒤에 있는 것을 가리는 동안, 한편으로는 회화적 일루전을 제공함으로써 착시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 것처럼 지은이는 현실과 그림을 중첩시키는 방법으로 병풍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현재 고궁박물원의 큐레이터를 제외하고는 <한시짜이의 밤잔치>에 대해 리위 황제가 누렸던 배타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행자나 심지어 연구자조차도 그림이 펼쳐져 있는 유리 진열장을 통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두루마리 그림은 "한 명의 관람자만을 위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두루마리 형식은 본질적으로 엿보기 경향과 시각적 이야기를 동반한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따라서 이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한번에 한 단락씩 풀어가며 보아야 한다. "이런 물리적 조작은 실제로 여행하는 느낌과 일치한다." 세 병풍 이미지는 그림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구분하고, 마치 실제 병풍이 뒤에 있는 것을 가림으로써 공간을 한정하듯이 보는 이의 눈길을 조절하는 것이다.

병풍의 또 다른 측면―일루저니즘―은 저우원쥐의 <병풍 속의 병풍>(重屛會棋圖)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은 주인과 그의 친구들이 넓고 이동이 자유로운 병풍 앞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그 병풍 이미지에는 이 그림의 구성과 비슷한 또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주인과 동일인일 한 남자가 침상에 기대어 있고 여자들이 시중을 들며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또 지은이는 화가가 산수(山水)가 그려져 있는 두번째 병풍으로 틀지워진 공간의 사람들을 같은 집의 내실에 자리한 '실제' 인물들처럼 보이게 하려고 교묘한 배치를 했다고 보았다. 이런 시각적 트릭은 주인의 두 세계에 위계질서를 부여한다. 하나는 공식적이고 남성적이며, 다른 하나는 사적(私的)이고 여성적이다. 
반면 학자-관료의 '문인'문화의 보증서 같은 산수(山水) 속의 자연 이미지는 세번째 영역, 곧 선비의 내적인 정신세계의 상징이다. 이후 400년간 문인의 엄청난 영향력은 이 위계질서를 변형시켜 자연을 벗삼은 지식인들의 관심을 대안적 문화에서 "어느 것―미술, 의복, 자기 이미지―에서나 고급화"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원대(元代, 1280∼1368) 류관다오의 작품인 <더위를 식히며>는 <병풍 속의 병풍>의 구성을 뒤집어서 전경(前景)에는 정원에서 쉬고 있는 남자를 설정하고, 주인의 그날 일과를 위해 먹과 종이를 준비하는 하인을 그린 장면은 병풍 이미지 속으로 밀어넣어 버렸다. 

<그림 속의 그림>의 특징 
이 책에는 그려진 이미지와 그것들의 구성적 배치, 물질문화와 미술사, 산수와 조용한 삶, 그리고 인물이 풍부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그림을 통해 갖가지 이야기들을 도출해 낸다. 예컨대 <뤄수이 강의 선녀>에서는 전설을, 아무 그림도 없는 '소병'(素屛)에서는 선비의 자기 이미지를, <십이 미인도>나 <평화로운 봄소식>에서는 고도의 정치적 선전을, <서상기> 삽화에서는 남녀의 섹슈얼리티를 읽는다. 이처럼 "경계를 허물고"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보려고" 병풍을 이용한 지은이의 시도는 낡은 역사적 범주(산수화나 문인화) 안에서 관습적으로 중국화를 바라보는 학자들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그는 필법(筆法)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중국화를 이해하는 데 기본이라고 해도 서화나 서법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에게는 암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구성, 공간, 매체라는 좀더 친숙한 현대적 용어로 중국화를 설명한다. 지은이가 이런 서술방식을 취한 것은 오로지 독자들에게 중국화를 좀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런 의도의 이면에는 동양화를 무조건 '신비화'하거나 '미화'하려는 모든 경향에 대한 무언의 비판이 담겨 있다.

저자 우훙(巫鴻)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대학(中央美術學院)에서 학사학위(1968)와 석사학위(1980)를 받았다. 1973~1980년에 베이징 고궁박물원 큐레이터로 일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미술사 연구로 박사학위(1987)를 받은 후 1993년까지 같은 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했다. 1994년 이후 지금까지 시카고 대학에서 중국미술사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조셉 레벤슨 상을 수상한 The Wu Liang Shrine: The Ideology of Early Chinese pictorial Art(1989)를 비롯해 Monumentality in Early Chinese Art and Architecture(1995), <중국 회화사 삼천년>(공저) 등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중국화 속 병풍의 비밀조선일보김태익
1999.10.12
02  병풍 속 문화와 생활상 읽기중앙일보남진우
1999.10.14
03  '병풍' 길잡이 삼아 중국 옛 그림 읽기한겨레신문이주현
1999.10.19
04  중국 미술 2천년 한눈에시사저널성우제
1999.10.21
05  2천년 중국미술사 탐험뉴스피플 
199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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