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일 일요일

이산의책49 녹주공안

녹주공안--청조 지방관의 재판기록
남정원(藍鼎元) 지음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차혜원 옮김
2010.2.4/A5신/272쪽/15,000원
ISBN 978-89-87608-68-6


청대 지방관 남정원이 쓰고 중국사 대가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해석한 소설만큼 재미있는 청대 민사·형사 재판이야기.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전통 중국사회의 실태를 기술한 책으로 이보다 더 재미있는 책은 없다고 장담하는 예측불허의 다큐영화 같은 역사기록.  

『옹정제』의 저자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주목한 재판기록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전통 중국사회의 실태를 기술한 책으로 이보다 더 재미있는 책은 없다고 말한다. 소설은 아무리 대가가 쓴 것이라도 허구로 인해 부자연스러움이 드러나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인물들이라서 독자는 흥미진지한 예측불허의 다큐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 책은 옹정제가 기근과 지진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지방의 지현을 발탁하는 과정을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상상해서 집필한 ‘발단―실제로 있었을 법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과연 옹정제가 선택한 인물,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인물일까? 이 책의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저자의 호(號)는 녹주(鹿洲)이다. 옹정제의 명령을 받아 중국 광동성 보령현과 조양현의 지현(知縣, 현의 우두머리)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이 다루었던 재판(公案)들을 사건별로 기록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란 무대배경만 조금 달라졌을 뿐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생생한 기록임을 반증해준다.
지현이라는 관직
명청시대에 지현이라는 자리는 중앙에서 파견하는 지방관 중에서 가장 낮은 관직이었지만 임명권자인 황제에게도 지현 본인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자리였다. 황제에게 지현 임명은 제국통치의 출발점이었고, 지현에 임명된 자에게는 관료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첫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만약 황제가 각 지방의 풍토, 민심, 연혁 등을 면밀히 고려하여 최적의 인물을 지현에 임명한다면, 그는 태평시대를 연 성군으로 칭송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민심을 잃고 폭군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파격적인 인사
지현이 되려면 과거의 최고(最高) 단계인 회시(會試)에 급제하여 일단 진사(進士) 학위를 얻어야 했지만, 남정원은 진사는커녕 그 아래 단계인 거인(擧人)도 되지 못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진사 못지않은 학식을 지녔는데도 시험운이 없었는지 과거의 가장 낮은 단계인 생원(生員)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행운이 찾아왔다.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고관들의 추천과 옹정제의 빼어난 용인술 덕분에 지현에 임명되었던 것이다. 옹정제가 남정원을 발탁한 것은 기존의 인사관행으로 보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을지 모르지만, 옹정제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평소에 옹정제는 무조건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보다는 융통성이 있고 일의 경중을 분간할 줄 아는 인물에 점수를 많이 주었는데, 이 당시 조양현 일대는 여러 해 계속된 기근으로 경제가 안 좋았으며 그 현민들은 예로부터 준법의식이 희박하기로 유명했다. 따라서 이런 지방일수록 법과 도덕을 내세우기보다는 백성의 현실적인 고충을 헤아릴 줄 아는 인물이 지현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 옹정제의 생각이었다. 옹정제의 판단은 옳았다. 남정원은 황제의 기대대로 이 다스리기 힘든 지방에서 지현직을 능수능란하게 수행해 나갔다.
 
소송을 통해 본 청대 사람들의 애환
분쟁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합의나 중재로 해결하지 못하면 최후의 방법으로 재판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청조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법률 서비스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문맹률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지만 소송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재판을 열고 판결을 내리는 일은 지현에게 치안유지와 세금징수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지현은 온갖 민형사상의 사건을 다루면서 자신의 지식과 경륜과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자신이 정의의 수호자이며 백성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판결을 통해 보여주어야 했다. 백성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백성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판결을 내리는 지방관은 손쉽게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남정원은 송대(宋代)의 명판관 포청천의 환생이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지방관으로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관내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악한 인간을 징벌하며 양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과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현청 관원들의 파업, 복수, 중혼(重婚), 인신매매, 형제간의 재산상속 다툼, 어업권 분쟁, 혹세무민하는 신흥종교, 입시경쟁, 부정부패, 생계형 범죄, 조직범죄, 근거 없는 고소와 맞고소, 린치, 권력남용, 상습적인 세금체납 등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역시나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사람 사는 세상이란 다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속단해서는 안 된다. 심문방식과 처벌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의 실현의 길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들로부터 명판관 소리를 듣는 훌륭한 지현이었던 저자조차도 법정에서는 어떻게든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험한 말과 유도심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함정수사 심지어 고문까지 사용한다. 물증보다는 자백을 범죄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또한 죄인에 대한 처벌 내용을 보면 징역형 외에도 신체형과 죄인에게 심리적 정신적 모욕을 주는 형벌이 많다. 그리고 재판광경을 구경하는 수많은 구경꾼들의 동향을 살피면서 사실상 재판을 통해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용의자라도 학생 신분(생원, 거인, 진사)이거나 전현직 관료 등은 법정에서 고문을 면제받는 특권을 누렸다. 이런 제도와 관행들은 분명 인권존중이나 평등, 법치 같은 근대적인 기준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이 체험적인 이야기를 읽는 동안, 늘 백성에게 이익이 되도록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그 마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끈기와 집념에 시대를 뛰어넘어서 공감하게 된다.
역사의 다양성을 본다
이 책은 실제로 있었던 소송사건들에 대한 기록이긴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역사는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중국사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디테일하게 청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실 사료적 가치를 지닌 청대의 책이야 무수히 많지만, 이 책처럼 재미까지 있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울러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기본적으로 역사는 폭넓게 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다음과 같은 충고처럼 말이다.
“이 책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리 편견을 갖지 않는 게 좋다. 요즈음은 지배자는 어떻든지 나쁘고, 하층민은 어떻든지 괜찮으며, 반란이 일어나면 사회가 진보하게 되고, 분쟁이 벌어지면 그게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일부 학자들 사이에도 있는 듯한데, 이건 정말 아니다. 역사는 가능한 한 다방면에서 보려고 애써도 저도 모르는 새 한쪽 견해로 쏠리는 경향이 있는데, 하물며 처음부터 렌즈의 위치와 방향을 비딱하게 고정시켜 놓은 상태에서는 진실의 사진이 찍힐 리가 없다.”

저자 남정원(藍鼎元, 1680∼1733)

청조 복건성(福建省) 장포현(휏浦縣) 사람으로 자(字)는 옥림(玉霖), 호(號)는 녹주(鹿洲). 1703년에 생원이 되고, 1721년(강희 60) 사촌형 남정진(藍廷珍)의 참모로 대만에 출정하여 주일귀(朱一貴)의 난을 평정. 1723년(옹정 원년) 공생(貢生)에 발탁되어 북경 국자감에서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편찬에 참여. 1727년(옹정 5) 광동성(廣東省) 보령현(普寧縣) 지현에 부임, 그 한 달 뒤 조양현(潮陽縣) 지현 겸임. 약 2년 뒤 모함을 받아 파직. 그 후 다시 옹정제의 부름을 받아 광동성 광주부(廣州府) 지부(知府)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병사. 저서에 『녹주전집』(鹿洲全集)이 있다.
 

해석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1901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나 1995년 타계했다. 교토(京都) 대학 문학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생을 교토대학 교수로 있었으며, 1960년과 1965년 사이에는 파리·하버드·함부르크 대학에 객원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중국사의 거의 모든 분야와 서아시아사에 걸쳐 방대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저서로는 『중국의 시험지옥―과거』, 『옹정제』, 『논어』, 『구품관인법의 연구』, 『중국사의 大家, 수호전을 歷史로 읽다』 등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민심을 얻는 지혜--국판 목민심서한겨레신문허미경2010.02.20
02 포청천의 환생한국일보오미환2010.02.20
03 녹주공안연합뉴스김태식2010.02.20
0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