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일 일요일

히스토리아문디02 아프리카의 역사

아프리카의 역사
존 아일리프 지음 / 이한규ㆍ강인황 옮김
2002년 12월 27일 발행 / 560쪽 / 값 25,000원

한국출판인회의 선정 이달의 책 * 학술원 2003년 우수학술도서
이 책은 인류의 기원에서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총선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전 역사를 다룬 통사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아프리카 역사서 가운데 가장 탁월하고 지적인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저자는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아프리카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 편집자 서평
이 책은 유럽사 중심의 시대구분을 배제하고 새로운 관점(인구사의 관점)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가족, 여성, 외부와의 관계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다룬 진정한 의미의 아프리카 '일반사'인 동시에, 최초의 인류와 오늘날의 아프리카인을 묶어 주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미지의 땅 아프리카
아프리카가 최근 우리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 준 사건을 들라면 단연 지난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세계 최강 프랑스를 이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시인이자 사상가인 레오폴 상고르가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즘에도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이들이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1960년대 중반 정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긴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일본조차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니까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야 갈 수 있는 아프리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물리적 거리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지구촌시대에 살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아프리카를 모르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 하나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아프리카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
아프리카의 역사가 중요한 첫번째 이유는 아프리카가 모든 인류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아프리카인이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지역을 개척해 왔고 지금도 그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에서 지은이는 아프리카인이 인류역사에 크나큰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존중받고 지원받으며 연구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인구사의 관점에서 본 아프리카의 역사
지은이는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닌 당대(當代)의 문제의식 속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는 대전제 아래 기본적으로 인구사의 관점을 취하여 아프리카의 전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 인구결정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변화의 민감한 지표로서 인구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의 근대사에서 나타난 급격한 인구변화는 역사의 배후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어떤 인구학적 특징을 보였길래 지은이가 그토록 강조하는 것일까.
아프리카는 유사 이래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영토에 비해서 늘 인구가 부족했다. 따라서 아프리카 전통사회의 모든 제도와 생활양식은 부족한 인구를 만회하거나 늘리려는 목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만약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양이나 동양으로 대별되는 문명의 잣대에 아프리카를 꿰맞추려고 하면 아프리카는 역사도 문화도 없는 땅이 되고 만다. 이 인구부족이라는 역사의 맥락 속에서만 우리는 아프리카에 오랫동안 거대한 정치조직체(예를 들면 국가)가 나타나지 않은 것, 심지어 많은 경우에 아프리카인들은 정치적 리더십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경계는 국경선의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지리적·지역적 경계로서 문화도 이 경계를 따라 형성되었다. 이는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이나 미국인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구가 밀집된 곳의 중심문화가 끊임없이 변경을 압박하고 그 너머로 팽창해 나가는 역사와 확연히 구별된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일부다처제가 단지 미개상태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부다처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로 인해 아프리카인이 특이한 사회적 갈등구조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아프리카에서는 계급갈등보다 세대간 갈등이 훨씬 컸고 그것이 사회변화를 주도했다.
인구부족이 가져온 결과 외에 아프리카인이 다른 대륙의 사람들과 판이하게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게 된 것은 아프리카가 유라시아의 중심부와 독특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아프리카는 기후변화로 사하라 지역이 사막으로 되기 전인 B.C. 3천년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라시아와 동등한 지위를 누렸으나, 이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부분적 고립이라는 특이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유라시아의 가장자리에 있으면서도 점진적으로 유라시아 문화를 받아들인 동남아시아나 스칸디나비아보다는 훨씬 고립되었던 반면 철기·가축·무역·질병·종교·문자 등을 유라시아 중심부와 부분적으로 공유했다는 점에서, 유라시아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킨 아메리카 대륙보다는 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프리카의 부분적 고립, 다시 말해서 외부와의 제한된 교류는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외래 문화와 종교를 적절히 수용하는 절충주의와 문화적 다양성을 낳는 토양이 되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왜 노예무역을 했을까
지은이는 15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왜 노예무역이 행해졌는지를 설명하면서 우리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노예무역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유럽인 노예상인들의 일방적인 만행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안에서는 이미 노예무역 훨씬 전부터 노예매매가 성행했고 노예제가 존재했으며, 따라서 노예를 사고 파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에서는 왜 노예제와 노예매매가 없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지은이는 인구부족이 순수하게 경제적인 수단에 의한 노동의 지배를 어렵게 만들면서 노예제와 노예매매를 자극했고, 그것이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및 서인도제도에서의 식민지 개척에 필요한 노동 수요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확대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은이가 유럽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노예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인이 얼마나 엄청난 시련을 겪었는지를 한 편의 기록영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예무역의 역사에서 아프리카인의 저력을 발견한다. "이런 불행 속에서도 아프리카인이 그들의 정치적 독립과 사회제도를 유지하며 노예무역보다도 오랫동안 온전히 살아남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치욕의 시기에 아프리카인은 가장 용감하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힘을 보여주었다."
식민지시대와 독립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유럽 열강은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아프리카 각국은 속속 해방과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학자들이 일제강점기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역사학계 역시 식민지시대를 두고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인다. 혹자는 식민지시대를 아프리카 역사의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고, 혹자는 아프리카의 전통이 완전히 파괴된 시대로 보았다.
그러나 지은이는 전자는 서부 나이지리아를, 후자는 벨기에령 콩고를 염두에 둔 평가라고 지적하고, 아프리카 전체를 볼 때 식민지시대는 모순적일 뿐 아니라 옛것과 새것이 혼재하면서 새로운 아프리카식 종합이 이루어진 시대였다고 말한다. 즉 아프리카인이 간직하고 있는 전통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며, 반대로 산업문명이 20세기의 아프리카인에게 제공한 것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시대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아프리카 역사 나아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인구성장이었다. 바로 이 인구성장이 1950년 이후 아프리카 역사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었다.
아프리카가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과정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단 독립을 하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가 건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국가의 건설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국은 내셔널리즘 또는 사회주의를 내세워 정권을 장악하고, 분절된 사회를 통합하며 경제발전을 꾀했다. 이런 근대화 전략은 1950년대에 큰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으나(지은이는 한국전쟁으로 국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여 아프리카가 많은 덕을 보았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후반에 위기에 직면했다. 그것은 인구증가 및 공공서비스 확대에 따른 사회비용의 증가, 국제유가 상승, 외채 증가 같은 환경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잘못된 정책 결정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회주의적인 전략을 채택한 나라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사정이 조금 낫긴 해도 자유시장 전략을 선택한 나라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1980년대의 광범위한 위기 속에서 IMF는 채무국들에게 구조조정전략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이 대목은 우리의 외환위기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세네갈과 가나 같은 나라는 이를 받아들였고, 시에라리온 같은 나라는 완강히 거부했다. 정치 역시 어려운 경제 상황 못지 않게 혼란스러웠다. 쿠데타와 내전이 끊이지 않았으며, 국민의 통합도 여의치 않았다. 기본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지역문제에 대한 관심이 너무 커서 국가에 대한 판단조차 지역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국가는 수년간 계속되는 극심한 기근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20세기의 천형으로 불리는 에이즈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백인 정권이 유지되던 남아프리카도 변혁을 피할 수 없었다. 난공불락과도 같던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가 붕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94년 총선에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흑인정치세력이 다수파를 차지하는 연립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아프리카 대륙 전체는 다시금 완전히 아프리카인의 역사무대가 되었다.
전망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해방과 함께 찾아온 20세기 후반의 환희가 점차 환멸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결코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아프리카인에게 해방과 독립을 안겨준 급격한 인구성장이 이번에는 그들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고통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아프리카인이 그들의 역사에서 보여준 극한적인 고통에 대한 인내, 명예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정신, 문화와 종교에 대한 절충적인 태도는 지금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되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저자 존 아일리프(John Iilife)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세인트 존스 칼리지 역사학부 아프리카사 교수이다. 전문 분야는 19∼20세기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역사이지만, 아프리카 역사 전체를 폭넓게 조명하는 연구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바로 그런 연구작업의 결과물인 이 책 <아프리카의 역사>는 가장 빼어난 아프리카 일반사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미국아프리카학회가 매년 최고의 아프리카 관련 학술서에 수여하는 헤스코비츠 상(賞)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A modern history of Tanganyika(1979), The African poor: a history(1987), East African doctors: a history of the modern profession(1998) 등이 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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