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기원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조상이 출현한 이후 소규모 수렵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할 때까지 인류는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느 정도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균형상태에 변화가 생긴것은 인류가 농경을 하고 가축을 기르며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다. 농업생산이 늘어나자 당연히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늘어난 인구를 바탕으로 더 많은 농경지를 개간하면서 자연환경을 농경에 적합하게 만들고 가축을 사육하자 일부 종의 동식물이 과다 증식하게 되었고, 반면에 종의 다양성은 파괴되었다. 종의 다양성이 파괴된다는 것은 먹이사슬이 단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기생생물의 잠재적인 먹이가 인간공동체 내에 밀집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특히 관개시설의 확충은 미시기생체의 이동을 수월하게 해주었고, 도시의 발달은 인구의 집중을 가속화시켰다. 도시의 인구밀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기생생물에 의한 감염증이 인간을 통해 인간으로 전파되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대량감염으로 폭발했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전염병에 의한 떼죽음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전염병이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
전염병이 인간에게 고통만 준 것은 아니다. 고대 문명의 형성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고대 인도 북서부에서 성장한 힌두 문화는 세력이 막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동남부의 고온다습한 숲지대 종족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고, 이들을 불가촉천민으로 규정하여 소극적으로 힌두 문화에 동화시키려 했다. 그것은 숲지대 종족의 군사적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 아니라 침입자들이 열대성 전염병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숲지대 종족은 힌두 문명에 침식당하지 않고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갔으며 오늘날 인도 문화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되었다.
중국 황허 문명도 초기에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황허 문명의 건설자들은 사나운 황허의 물줄기와 싸워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면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으나, 진 시황제의 막강한 군사력으로도 양쯔 강 이남으로 진출하지는 못했다. 중국사에서 본격적으로 양쯔 강에 진출하기 시작하는 것은 한대(漢代)가 끝나고 삼국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사실 농경을 위한 자연조건으로만 보면 황허 유역보다 양쯔 강 이남이 비할 바 없이 유리했으며, 황허와 비교하면 양쯔 강은 그야말로 온순한 강이었다. 한족이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더욱이 그들은 충분한 인구와 군사력과 농경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족은 황허의 치수사업에 성공하고 무려 천 년이나 지난 뒤에야 양쯔 강 이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양쯔 강 이남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어떤 장벽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열대성 전염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부에는 없는 새로운 전염병에 적응하는 데 그만한 시간이 걸린 셈이다. 한족은 이 장벽을 넘어섬으로써 명실상부한 중국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전염병의 전지구적 균질화
지역간 교역과 교통이 발달할수록 전염병의 피해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다. 몽골족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가 하나로 연결되자 질병의 교환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다. 1346년 몽골군이 크림 반도의 카파를 포위 공격할 때 몽골군 안에서 페스트가 발생했다. 몽골군은 곧 퇴각했으나 유럽의 진짜 재앙은 이때부터였다. 몽골군을 통해 유럽에 유입된 페스트(흑사병)는 1350년까지 불과 4년 동안 유럽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것도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은 불행에 비하면 약과다. 1521년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단 600명의 병사로 인구 수백 만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했다. 이것은 군사력에 의한 정복이 아니었다. 코르테스의 진짜 무기는 전염병이었다. 이후 120년 동안 멕시코와 페루는 유럽인이 지난 4천 년 동안 겪었던 전염병을 순차적으로, 즉 처음에는 천연두를, 그 다음에는 홍역을, 그 다음에는 발진티푸스와 유사한 질병을, 그 다음에는 인풀루엔자와 디프테리아를 경험하면서 인구가 90%나 감소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전멸한 곳도 있었다. 아마존 밀림에는 아프리카의 말라리아와 황열증이 침투하여 오늘날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엄청난 전염병의 재앙은 인간의 마음과 가치관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페스트의 침입 이후 유럽에는 신비주의가 등장했고 가톨릭에 반기를 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하물며 유럽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기존의 제도와 전통, 종교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교역 및 교통의 발달로 인간은 대양을 뛰어넘어 질병을 교환하게 되고, 전 인류가 거의 모든 질병의 패턴을 균질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신종 전염병이 생기면 항로를 따라 빠르게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매독은 바로 대항해시대의 산물이다.
18세기 이후 의학의 발달이 초래한 생태적 영향
17세기 중반 이후 세계 각지의 문명은 뚜렷하게 생태적 균형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더 이상의 인구감소는 없었다. 특히 유럽과 중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인구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농업생산성의 향상과 농촌 인구의 영양상태 개선이었다. 여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래된 옥수수와 감자가 크게 한몫했다.
전염병 발생이 감소한 데는 의학의 발달이 기여한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저항력 이 커진 것이 더 주요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도시에는 엄청난 인구가 밀집해 있었고 여전히 도시의 사망률은 출생률을 앞질렀다. 다시 말해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없으면 도시는 존립할 수 없었다. 19세기에 인간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 전염병은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인간에게 공포를 안겨준 동시에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공중보건을 더욱 체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콜레라가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대도시에서는 상하수도 시설을 개편하기 시작했고, 이후 도시의 위생상태는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하여 지구상에 도시가 생겨난 지 약 5천 년이 지난 1900년에 이르러서야 도시는 농촌에서 유입되는 이주민 없이도 인구를 유지 또는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해왔으나 그 발전이 생태적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혹은 미시 기생생물이 어떻게 반격해 올지 우리는 가늠할 수 없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측불허의 신종 감염증들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인간이 사망률에 맞추어 출생률을 조절하여 인구와 자원의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맥닐은 분명하게 말한다. "가까운 과거에 그랬듯이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엄청난 생태적 격변을 맞을 것"이라고.
저자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1917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4∼1939년에 시카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코넬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 군에 입대하여 5년 동안 군복무를 하고 복학, 1947년에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40년간(1947~1987)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유럽 문화와 학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네덜란드 정부재단에서 수여하는 에라스무스 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빼어난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2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는 이 책을 비롯해 이 책의 자매편인 <전쟁의 세계사>(The Pursuit of Power)가 있다. 또한 <세계사>(A World History)와 <휴먼 웹>(The Human Web)이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북리뷰
| 제목 | 게재지 | 글쓴이 | 날짜 |
01 | 미국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 책 두 권 출간 | 연합뉴스 | 서한식 | 2005.10.05 |
02 | 사스·조류독감… 적과의 동침史 | 조선일보 | 김철중 | 2005.10.08 |
03 | 대재앙 콜레라, 상하수도 시설 바꿨다 | 중앙일보 | 남윤호 | 2005.10.08 |
04 | 인간사 물줄기 바꾼 전염병… 전쟁 비합리성 고발 | 세계일보 | 심재천 | 2005.10.08 |
05 | 진시황이 양쯔 강을 못 건넌 이유 | 부산일보 | 김상훈 | 2005.10.10 |
06 | 전염병과 인류역사 관련성 분석 | 대전일보 | 김형석 | 2005.10.13 |
07 | 전염병과 전쟁의 상관관계 '역사풀이' | 영남일보 | 김봉규 | 2005.10.15 |
08 | [책] 전염병의 세계사 | 매일신문 | 노진규 | 2005.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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