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이후 일본사회와 제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세 번의 역사적 전기--도쿠가와 막부의 중앙집권, 미국의 페리 제독의 내항과 함께 시작된 외부세계에 대한 문호개방,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등--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근대일본의 형성과정과 2000년까지의 일본역사를, 마치 온갖 실존인물들이 등장하는 대하역사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한 잰슨의 역작.
● 편집자서평 | ||||||||||||||||||||||||||||||
미국의 으뜸가는 일본사가 잰슨의 최고업적인 이 책은 앞으로 오랫동안 학생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누구나 잰슨의 유려한 이야기와 인물평, 명쾌하고 상세한 설명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프랭크 기브니근대일본에 대한 의문에 답을 얻고자 한다면 잰슨의 이 신작 역사서보다 더 나은 길잡이를 찾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제프리 오언
백조의 노래
공정하고 폭넓은 시각이 돋보이는 이 기념비적인 저작은 1600년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사회에 대해 쾌도난마와 같은 설명을 들려준다. 저자 마리우스 잰슨은 50년 이상에 걸친 일본사 연구작업의 정수만을 뽑아 혼신의 힘을 다해 이 필생의 역작을 완성했고, 책이 출판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 책은 잰슨의 ‘백조의 노래’가 되었다. 1600년 이후 일본사에는 사회와 제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세 번의 역사적 전기가 있었다. 우선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중앙집권적이면서 봉건적인 사회질서가 부여된 것이며, 두 번째로는 미국의 페리 제독의 내항과 함께 시작된 외부세계에 대한 문호개방이며, 세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이다. 이 책은 이런 결정적인 국면에서 발휘되는 일본사의 계기적인 발전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근대일본의 형성과정을 마치 온갖 실존인물이 다 등장하는 대하역사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도쿠가와 시대
본문만 1,200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역사서의 출발점은 17세기의 일본이다. 당시의 일본은 분열과 전란과 침략(임진왜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혼란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전역을 통일하고 도쿠가와 막부를 수립했다. 잰슨은 약 두 세기 반 동안 지속된 도쿠가와 시대에서 역사의 아이러니와 일본 근대의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한다. 그래서 다른 어떤 통사와도 비교도 안될 만큼 도쿠가와 시대를 상세하고도 심도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막번체제로 정의되는 도쿠가와 시대는 지방분권적인 봉건제와 중앙집권적인 독재체제가 균형을 이루고 있던 시대였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 무게중심은 봉건제에 있었다. 즉 막부의 통치방식은 기본적으로 분할지배였다. 결국 막번체제는 일본영토를 크고 작은 번으로 분할하고 막부가 그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쇄국정책을 표방하여 외부와의 모든 교류를 원칙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인 통합이나 개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던 이 체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통합과 개방을 피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분할지배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실시한 참근교대제는 끊임없이 사람과 물자가 지방과 수도 에도(도쿄)를 오고가게 만듦으로써 전국적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다. 그리고 막부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네덜란드인에게만 무역을 허락했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직원들이 상주했던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는 조금씩 유럽의 문물이 흘러들어와 일본에 ‘난학’(蘭學)이라는 서양학문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18세기 후반에는 일부 일본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연구모임을 만들어 네덜란드어로 된 해부학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일본 고유의 국학(國學)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긴 했지만, 막부 말기의 페리 내항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 앞에서 일본인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근대적인 국민국가 건설에 성공하고 전통을 재창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음을 잰슨은 강조하고 있다.
근대일본의 빛과 어둠
근대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는, 더 나아가 근대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따른다.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이 얻은 근대화에 성공한 역사상 최초의 비서양국가라는 영예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근대화과정에서 보여준 일본인의 창의성과 노력 뒤에는 그늘에 가려진 다수의 희생이 있었다. 일본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었고, 일본의 식민침략과 제국주의 전쟁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입은 이웃나라들이 있었다. 일본근대사를 쓰고자 하는 역사가라면 이런 역사의 어둠을 기록해야 하며, 잰슨 역시 그것을 빠짐없이 서술하고 있다. 특히 한국, 중국 등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나라들과, 일본의 우방이자 적이었던 미국과의 관계는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싼 구한말의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한 서술은 우리의 역사교과서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어떤 면에서는 훨씬 상세하다. 김옥균은 왜 어떻게 암살당했는가? “김옥균의 처참한 말로는 리훙장의 배신, 일본의 위상과 존엄성의 훼손, 조선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증거로 제시되면서 도쿄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2권 본문 677∼678쪽 참조)
이론화된 역사가 아닌 현실의 역사 사실
이 정도 두께의 일본사 책을 학문적인 토대 위에서 재미있고 쉽게 풀어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잰슨은 역사가로서 그 어렵고 힘든 작업을 해냈다. 그가 독자로 하여금 그의 대작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이야기에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구성은 어려운 이념이나 이론에 역사를 짜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와 일본의 악연을 논외로 한다는 전제 아래, 우리는 이 책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히로히토(裕仁) 천황,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같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또 다른 면면을 확인할 수 있고, 그외에도 당대 혹은 후대에 기억해 둘 만한 흔적을 남기고 간 승려, 학자, 사상가, 교육자, 혁명가, 정치가, 군인, 시인, 소설가, 평론가, 화가, 영화감독 등 수십 명에 달하는 낯선 일본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일본사람들, 즉 농촌과 도시에서 혹은 제한된 구역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야 했던 일본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잰슨은 일본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적지 않은 외국인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언급한다. 너무나 유명한 페리 제독이나 맥아더 사령관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쑨원, 조선인 도공, 김옥균, 안중근까지 일본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당시 가장 높이 평가되던 도자기는 손으로 빚은 투박하고 엉성한 주발로 그 자연스러움이 다도의 이상을 상징했다. 조선에 출병했던 다이묘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의 도공들을, 어떤 경우에는 한 마을의 도공 전부를 일본으로 끌고 갔기 때문에 이후 일본 도자기는 풍부해졌다고 볼 수 있다.…… ”(1권 본문 57쪽)
비록 잰슨은 일본사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역사란 자기들끼리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외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다소 길게, 때로는 간략하게 서술된 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 일본의 근대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해 갔던 것이다. 일본근대사가 주는 교훈 일본근대사의 가장 큰 피해자인 우리로서는 일본근대사에서 얻는 교훈이란 어쩌면 반면교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런 역사의 앙금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일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특수한 경험만을 앞세워서 일본사를 해석하면 그만큼 잃어버리는 부분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우리와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제3자의 시각이 필요하다. 이 일에 잰슨 만한 적임자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반 세기 이상 동안 정열적으로 일본 근대사를 천착해온 노(老) 역사가는 일본의 근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우리처럼 대상을 깡그리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찬미하지도 않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책과의 기나긴 여정을 마감한다.
"일본사회는 지난 천년 동안 놀라운 탄력과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에 나오는 천년 전의 국정사회는 일본을 800년 동안이나 묶어둔 무사의 시대에 자리를 내주었다. 메이지 혁명은 이 사무라이들을 무장해제하고 대신 국가를 무장시켰다. 새로운 메이지 제국은 잠시 번성했지만, 패전과 함께 국가 자체가 무장해제되었다. 재건을 통해 일본은 엄청난 경제적 영향력과 국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 구조 역시 주기적인 불황에 대한 면역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본의 과거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재능과 지략과 용기를 갖춘 이 국가가 새로운 밀레니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만약 거두절미하고 이 마지막 대목만 놓고 본다면 사람들에 따라서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 책이 일본사에 대한 통찰을 넘어서 역사에 대한 한 역사가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런 의문이 듬직도 하다. 한국에 애정을 갖고서 한국사를 이토록 흥미진진하고도 공정하게 쓸 수 있는 서양인 역사가를, 우리는 과연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지은이 마리우스 B. 잰슨(Marius B. Jansen)
192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 1943년 프린스턴 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미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했다. 이때 미 육군의 일본어 특훈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현지에서 군생활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역 후 하버드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사를 전공하고 평생 일본사를 연구하게 되었다.
1950년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혁명운동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워싱턴 대학을 거쳐 1960년부터 1992년까지 프린스턴 대학에서 일본사 교수로 재직했다. 그동안 미국아시아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미국에서 일본학의 중심적 존재로 활약했다. 1982년 일본의 국제교류기금상을 수상했고, 1998년에는 일본학사원 객원회원에 선출되었다.
말년에는 극도로 약화된 시력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책 『현대 일본을 찾아서』를 집필하는 데 전념하여 마침내 2000년 12월 8일 이 필생의 대작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모든 기력을 소진했던 탓이었을까, 그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2000년 12월 10일 밤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는 이 책 외에 The Japanese and Sun Yat-sen(1954), Sakamoto Ryoma and the Meiji Restoration(1961), Japan and Its World: Two Centuries of Change(1982) 등이 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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