멩켄의 편견집
H. L. 멩켄 지음/김우영 옮김
2013년 6월 30일 발행/480쪽/값 20,000원
ISBN 978-89-87608-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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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할리우드, ‘위대한 게츠비’로 표상되는 아메리칸 드림이 넘실대던 1920년대 전반의 미국.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이란 사실상 신기루에 불과했다. 금주법, 마피아, 검열, KKK단으로 표상되는 광기와 폭력, 부정과 부패, 억압과 차별이 신기루에 가려진 미국 사회를 유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도한 물질문명과 일그러진 욕망의 도가니 속에서 분연히 펜을 들어 대중의 우행(愚行)을 통렬히 비판하고 세상의 온갖 위선을 조롱하면서, 자유와 책임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적 성숙을 역설했던 위대한 언론인 멩켄이 남긴 불후의 명작.
멩켄은 이 모든 세대(世代)의 교양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월터 리프먼(『여론』의 저자)
멩켄은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미국문학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나는 그가 한 말에 놀라는 게 아니다. 도대체 그말고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할 용기를 내겠는가.
―리처드 라이트(『미국의 아들』의 작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언론인, 멩켄
멩켄만큼 20세기의 미국인과 미국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언론인은 없었다. 비록 뉴욕이나 워싱턴의 메이저 신문이 아닌 볼티모어의 지역신문에서 평생 기자생활을 했지만, 그가 쓰는 기사와 칼럼은 미국의 수많은 신문에 재게재되어 전국민이 애독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일개 신문기자가 이렇게 대중의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가 독신을 청산하고 결혼을 발표했을 때는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신문이 1면 기사로 보도할 정도였고, 말년에는 언론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뉴스위크』지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언론인은 아니었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늘 대중의 우행(愚行)을 질타했다. 그러나 그의 비평에는 솔직함과 진정성이 담겨 있었기에 당대의 많은 미국인들은 세상의 위선을 가차 없이 조롱하는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그 특유의 거친 익살과 풍자로 엮어낸 언어의 유희에서 새로운 개안(開眼)의 즐거움과 교훈을 얻었다.
편견 없이 『편견집』 읽기
국내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멩켄의 『편견집』이 쓰인 시기는 1920년대 전반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미국만은 미증유의 자본주의적 번영을 누리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번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광기와 무법, 억압과 차별이 미국 전역에 만연해 있었다. 멩켄은 이런 야만적인 상황이 미국 주류사회(앵글로색슨계 미국인)의 시대착오적인 보수성과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망상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고 진단한다. 이러면 상투적인 양비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멩켄의 논조에는 양비론으로 환원할 수 없는 확고한 입장과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성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으면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야유를 퍼부었다. 예컨대 그의 눈에는 그리스도교 전도사나 도덕향상운동가나 사회주의자나 매한가지였다. 그 대상이 영혼이 됐든 사회가 됐든 몸이 됐든,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 데, 이들은 마치 돌팔이 의사처럼 자기가 완벽한 치료법을 갖고 있는 양 떠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정체성
『편견집』의 다종다양한 에세이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멩켄은 미국이 천박한 삼류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에 환멸을 느끼고 유럽으로 이민이나 망명을 하는 지식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이 에세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장판 같은 미국 땅에 남아 미국인으로 사는 행복을 익살스럽게 설명하는데, 그 이유가 참으로 걸작이다. 이와 함께 미국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또 한 편의 에세이가 「농부」이다. 「농부」의 논조는 우상파괴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칭송되는 농민의 전통적인 미덕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의 본질은 단순히 농민에 대한 악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미국 농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인종주의․지역주의․이기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미국사회의 만화경
『편견집』의 에세이들은 미국의 문학, 언론, 정치, 종교, 철학, 예술을 비롯해서 인물평, 성(性), 결혼, 자살, 사형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멩켄은 이런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서, 미국문화의 새로운 기운과 성숙을 가로막는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몇 가지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에는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월트 휘트먼이 내무부 하급 공무원으로 일할 때, 신임 내무장관 제임스 할런은 휘트먼이 『풀잎』의 저자임을 알고는 휘트먼을 곧바로 해고했다. 『풀잎』이 외설스러운 시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멩켄은 「불멸의 세 미국인」에서 할런을 이렇게 추모한다. "이 사건과 이 사람 할런을 기억해두자. 할런은 그냥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1년에 한 번은 교회에 가서, 1865년의 어느 날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과 최악의 꼴통을 한 장소에 있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지금은 환경운동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스콧 니어링 박사가 젊은 시절 급진적인 경제학자로서 개혁사상을 설파하다 대학해서 해고된 적이 있는데, 멩켄은 「우울한 학문」이라는 에세이에서 이것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멩켄은 니어링의 이념에 동의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니어링이 신중하지도 온건하지도 정통파에 속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추방된 것이라고 잘라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급진주의자가 아니라 보수적인 정통파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아마추어 경제학자들, 주로 사회주의자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 나라에 유포시킨 일부 교의보다 사실관계가 의심스럽고 논리가 엉성한 교의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나는 고생스럽게 그것을 비판하는 책까지 썼다. 나의 확신과 본능은 그 반대편에 있다. 그러나 유식한 교수들이 정말로 완벽하고 절대적인 학문의 자유를 갖고 있음을 내가 확신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이따금 자기의 직업, 강의일정, 책판매, 은신처를 걱정하지 않고 소신껏 다른 방침을 취하는 모습을 내가 상상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확신과 직감 속에서 훨씬 큰 안락감을 느낄 것이다."
순교자들에 대한 풍자는 거의 포복절도할 수준이다. 「젊은이에게 주는 충고」라는 에세이 중 순교자라는 소제목이 붙은 글에서, 멩켄은 종교에 목숨 거는 것보다 실리를 챙기는 게 장땡이라는 충고를 해준다. "누가 1903년산 라우엔탈 포도주 1병을 준다고 하면,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종파의 세례도 기꺼이 받을 용의가 있다. 단 나의 볼품없는 알몸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조건은 붙여야겠지만 말이다. 만약 10병을 준다면, 나는 세례뿐 아니라 견진성사까지 받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관한 한 나는 배짱이 두둑하다. 거짓말 몇 번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멩켄 시대의 미국인도 오늘날의 우리나라 국민들 못지않게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멩켄은 「정치인」이라는 에세이에서, 정치에 열 받지 않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조금 길게 인용해본다.
"미국인은 잘못된 가정(假定)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정치라는 중대한 일에 대해서 건전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과 불행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잘못된 가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인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이 중 한 부류는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가정이다. ……사실 정치인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가정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한 부류가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는 가정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하에서 좋은 정치인은 정직한 강도만큼이나 상상하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이다. ……정치인은 기껏해야 필요악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거의 견디기 힘든 성가신 존재이다.
……우리는 악순환에 빠진 것 같다. 불쌍한 납세자들은 한 거대 정당의 정치인들에게 약탈당하고, 다른 거대 정당의 정치인들에게 속은 다음, 프리랜서 불량배 집단, 즉 무소속 후보나 진보주의자나 개혁가 등에게 표를 던진다. 사실 명칭은 중요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 후 이 신사들에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약탈당한 납세자들은 절망하여 노회한 정치꾼에게 돌아가고, 또 다시 뜯긴다.
……나는 잘못된 가정(假定)이 철저히 배제된 선거를 상상해본다. 선거당일에 유권자들이 자신의 선택은 천사와 악마, 선인과 악인, 이타주의자와 야심가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두 명의 솔직한 수완가, 즉 그럴 듯한 헛소리를 남발하는 달변가와 조용한 행동가, 다시 말해서 셔토쿼 운동 강사와 좀도둑 사이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투표장에 가는 선거를."
카타르시스의 향연
우리말 표현 가운데 언론에 종종 사용되는 속된 말이 하나 있다. '까다'가 그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신네 신문은 까질 않아서 안 돼." "요새 엄청 까고 있어요." "깔 때는 깝니다." 그렇다. 저널리즘적인 글쓰기의 핵심은 '까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멩켄의 '까기'는 거의 예술이다. 문학용어를 사용해서 약간 고상하게 말하면, 독자한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리고 하나 더, 멩켄은 '까기'만 잘한 것은 아니다. 칭찬도 예술 수준이었다. 그 중의 어떤 칭찬은 멩켄 자신이 받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주어만 바꾼다면.
"모든 가치를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편견집』이야말로 견실한 예술가, 대단히 지적이고 용감하고 독창적인 인간으로 판명될 한 미국인이 남긴, 그리고 한때 그를 제거하려고 유치한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던 꼴통들과는 격이 다른 한 작가가 남긴 필생의 역작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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