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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과 함께 근대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중국은 무기력하게 영국에 패하면서 충격을 받는다. 이 외부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부 갈등이 폭발한다. ‘태평천국’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한 전란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이 엄청난 사건의 전말과 훙슈취안(洪秀全) 등 핵심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역사이야기이다.
“…20년 이상 중국 전문가로 살아오면서 나는 이보다 더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역사연구서를 읽은 적이 없다. …단언컨대 19세기 중국을 이해하려 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책이며, 그 주제에 관해서 이것에 필적할 만한 ‘괜찮은 읽을거리’는 달리 없다.” ―리처드 J. 스미스(라이스 대학 교수), 『휴스턴 크로니클』지에서
“놀랍고 신선하다. …이로써 스펜스는 서양의 걸출한 중국사가임이 분명해졌다.” ― 리처드 번스타인, 『뉴욕 타임스』에서
“매혹적이다. …박식과 박력으로 써내려간, 홀딱 반할 만한 역사서.” ― 『파이낸셜 타임스』
훙슈취안은 누구인가
훙슈취안(洪秀全)은 1814년 중국 남부 광둥 성(廣東省) 화 현(花縣)의 하카(客家)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카는 민족적으로 중국의 다수민족인 한족(漢族)에 속하지만 자기들만의 언어(하카어)와 풍속과 전통을 고수하는 유별난 존재였다. 특히 하카는 한족의 대표적인 풍습인 여성의 전족 풍습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소수민족이나 천민집단처럼 하카가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훙슈취안은 비록 가난한 하카 농사꾼의 아들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는 22세 때인 1836년부터 1843년까지 7년에 걸쳐 도합 네 번 과거에 응시했다. 그러나 운이 없었는지 실력이 부족했는지 좌우지간 과거의 최하단계인 현시(縣試)에만 합격했을 뿐 그 다음단계인 부시(府試)에서 번번이 낙방하고 만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를 준비하며 출세를 꿈꾸던 이 기간에, 그것도 첫 번째 도전하는 부시를 치르러 광저우(廣州)에 갔다가 그 시험장 근처에서 그는 자기 인생에 대전환을 가져오는 책자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되고, 그 이듬해 두 번째 부시를 치른 다음에는 집에 돌아와서 사경을 헤맬 정도로 큰 병을 앓으며 일종의 환몽을 보게 된다. 책자는 중국인 침례교 개종자 량아파(梁阿發)가 쓴 『권세양언』(勸世良言)이었고, 환몽은 훙슈취안이 하늘에 올라가 하늘의 아버지와 형(兄)을 만나고, 세상의 요괴를 몰아내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권세양언』과 자기의 꿈을 연결짓지 못했다. 그 책자를 자기 방 선반에 올려놓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스도교 선교용 소책자인 『권세양언』을 읽고서 자신이 꿈에 본 그 노인과 젊은이가 다름 아닌 하느님과 예수이며 따라서 자신은 ‘하느님의 중국인 아들’이자 ‘예수의 친동생’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1843년, 그러니까 그가 네 번째로 과거에 낙방한 뒤의 일이었다. 이후 그는 과거에 두 번 다시 응시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지상낙원을 건설하는 길로 나서게 된다. 그의 신비로운 권위에 더하여, 청조를 요괴로 규정하고 지상낙원을 약속하는 그의 설교는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던 하카와 상인, 재야 지식인을 비롯해서, 세상이 뒤집어져도 더 이상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천지회나 삼합회 같은 비밀결사의 구성원, 비적떼, 소작농, 노동자, 광부, 천민들을 매료시켰다. 이들은 훙슈취안의 종교조직 배상제회(拜上帝會)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리하여 1851년에 태평천국의 시대는 막을 열었고 훙슈취안은 태평천국의 천왕(天王)이 되었다. 그리고 1864년 훙슈취안이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하고 태평천국의 수도 난징(南京)이 함락됨으로써 13년간 중국 남부의 상당 부분을 다스렸던 태평천국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태평천국의 역사적 교훈 중국공산당 당국은 훙슈취안을 비롯한 태평천국의 지도자들을 원(原) 사회자의자로 공식 규정함으로써 태평천국의 혁명적 성격과 그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 조너선 스펜스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천년왕국신앙이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 중국 전통과 그리스도교의 갈등, 당시의 서양인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태평천국과 그 지도자들, 그리고 훙슈취안의 성서 해석에 많은 비중을 둔다. 스펜스는 이런 지극히 사적이고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측면들에 주목하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동서양의 거의 모든 태평천국 관련 사료를 빠짐없이 섭렵하여 훙슈취안과 태평천국의 역사적 실체에 접근해 간다. 혹자는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훙슈취안과 태평천국에 대한 이념적인 판단의 편향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명쾌한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면 굳이 애매모호하게 논점을 흐릴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라고.
그러나 스펜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역사는 어떤 법칙과 인간의 의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역사에 대한 시각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태평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에는 태평천국을 쌍수로 환영한 사람들 못지않게 태평천국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아울러 전자는 못 가진 자고, 후자는 가진 자라고 이분법적으로 단정지어서도 안된다. 그 만큼 실제 역사는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태평천국은 그 이름처럼 ‘큰 평화’를 이룩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하려 했으나, 현실에서는 요괴를 주살하고 자기를 방어한다는 명분 아래 전쟁과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이 격변의 최대 피해자는 태평군도 청조 정부군도 서양인도 아니었다. 전란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떠돌아 다니는 무수한 피난민들이 있었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태평군에게 당하고 정부군에게 당하고 심지어 비적떼에게까지 당해야 했던 수많은 양민들이 있었다.
태평천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서양과의 관계이다. 훙슈취안이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태평천국과 서양과의 관계 악화는 태평천국의 멸망을 재촉했다. 이런 다층적인 세부를 고려한다면 태평천국은 난일 수도 변혁운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훙슈취안을 비롯한 태평천국 지도자들의 강렬한 개성이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포기할 줄 모르는 불요불굴의 정신, 초인적인 인내, 상상을 초월한 군사작전 능력을 발휘하는 불세출의 영웅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게도 욕망에 눈이 멀어 동지를 깔보고 배신하고 서로 죽이는 형편없는 소인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더 드라마틱한지 모르겠다. 아마 독자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수호전』의 주인공들이 머리에 떠오를 수도 있고, 중국혁명의 지도자들이 순간순간 연상될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훙슈취안에게 묘한 마력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역사가의 냉정함을 한 순간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역사가로서 태평천국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묘사한다. “나는 훙슈취안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염원에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책 앞머리에서 인용한 키츠의 말에는, 훙슈취안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천상의 아이들까지도 놀라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은 사람이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키츠의 말 자체도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런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 대가를 그다지 주의 깊게 계산하지 않음으로 해서 역사의 고통은 시작된다.” 지은이 조너선 스펜스(Jonathan D. Spence)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며, 현재 미국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다.193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윈체스터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9년 예일 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1965년에 역사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구겐하임 펠로십, 맥아더 펠로십, 라이오넬 겔버상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예술과학원과 미국철학협회 회원이다. 역사와 문학을 접목한 그의 독특한 역사서술방식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 모두를 사로잡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쓴 책으로는 『현대 중국을 찾아서 1·2』 『천안문』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칸의 제국』 『강희제』 『왕 여인의 죽음』 『반역의 책』 등 10여 권이 있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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