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위의 시대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고 있지만 고대와 중세 초기는 간결하게 압축적으로 기술하고 서기 1000년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다룬다. 맥닐이 인류역사의 획기적인 변화의 출발점을 중국의 송원대(宋元代)로 보는 이유는 구태의연한 상명하복의 행동양식이 아닌 시장가격의 변동에 따라 행동을 바꿔 나가는 '시장지향형 행동양식'이 역사상 처음으로 임계량을 넘어서 작용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시기였던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세계사에서 근세는 중국 송원대에 싹텄고, 송원 두 나라가 견인차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송조는 문관 중심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제작에 필요한 철을 공급하는 제철업과 시장경제의 발달이 뒷받침되었기에 100만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시장경제의 발달은 지배계급인 사대부층이 상인의 치부(致富)에 반감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서 한계에 도달했다. 반면 시장경제가 거침없이 발달한 지역은 여러 나라로 이루어진 유럽이었다. 유럽에서는 군주들이 세금을 부담하는 상인이나 직인이 경쟁국으로 도망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인에게 무제한적인 자본축적을 허용했다.
유럽에서 전쟁이라는 비즈니스
중국에서는 상인뿐만 군인도 천대를 받았지만 유럽에서는 군인 역시 대접받는 존재였다. 유럽의 군인은 '전쟁기술'을 구사하는 전문직업인으로서 고용주인 군주와 거의 대등한 청부계약관계를 맺고 전장에서 독자적인 활약을 펼쳤다. 유럽에서 상인과 군인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상호간의 관계가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20세기 군산복합체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군상복합체'를 이루고 있었고, 유럽의 군주들은 경쟁국에 대항하려면 '군상복합체'에 의존하여 '상업화된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율을 적정 수준으로 묶어 상인들이 기꺼이 세금을 내게 하고 그 세금으로 군사전문가를 고용하여 전쟁에 임하게 했으며, 군사전문가 휘하의 군인들은 자신이 받은 봉급을 민간에서 소비하여 민간경제를 자극했다. 이런 유효수요를 통해 경제가 더욱 활발해지면 그만큼 세수가 증가했고, 세수가 증가하면 군주는 다시 군사력을 강화해 나갔던 것이다. 유럽에서 시장경제의 급성장과 비유럽 세계에 대한 '전쟁기술'의 절대적 우위 확립은 결국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군상복합체'는 17세기에 발렌슈타인의 보헤미아 및 구스타프 아돌프의 스웨덴 같은 후진지역에까지 보급되었고, 동시에 마우리츠는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군사훈련법을 고안했으며, 프랑스와 부르고뉴 공국에서는 공성포와 함재포 제작기술이 진일보함으로써 ‘상업화된 전쟁’의 위력은 점점 커졌다.
영국과 러시아의 급부상
유럽이 비유럽 세계에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유럽의 동서 양끝에 위치한 변경국가 러시아와 영국은 가장 큰 이득을 누리며 빠르게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어서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그리보발 같은 신세대 지성파 군인이 속속 등장하여 야포를 개발하고, 사단조직을 채택하고 평시에 군사작전계획을 입안해 두는 참모업무를 개설하는 등 군사적 변화를 주도했다. 이런 변화된 군사체계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기초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카르노와 나폴레옹은 18세기의 인구증가로 인해 농촌에서 흘러나온 혁명적 군중을 그리보발 시대에 거의 완성되어 있었던 시스템에 투입한 것에 불과했다. 한편 영국의 산업혁명은 군사적 수요의 도움을 받아 인구증가를 완전히 흡수했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군사기술은 오히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아무튼 그 성과를 전쟁에 응용하는 일은 19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현실화되었다.
전쟁의 산업화
19세기 후반에 영국 산업혁명의 성과는 마침내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산업화된 전쟁'을 낳았다. 미국에서 개발된 선반기술에 의해 후장식 라이플총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그때까지 유럽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육군은 산업기술에서 뒤떨어짐으로써 크림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았다. 이 시대의 특징은 민간의 산업기술이 육해군의 조병창보다 앞서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크림 전쟁 중에 영국의 사업가 윌리엄 암스트롱은 민간기업의 제조기술을 무기생산에 응용하면 획기적인 신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 별 어려움 없이 후장식 강선포를 개발했다. 이것이 크루프사로 대표되는, 전세계를 고객으로 상대하는 근대 무기제조 비즈니스의 효시였다. 아군과 적군 모두 후장식 라이플총을 사용하는 새로운 전쟁은 사실 방어하는 쪽이 공격하는 쪽보다 훨씬 유리해지는 특성이 있었으며 이것은 미국 남북전쟁에서 예시되었다. 하지만 때마침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과 보불전쟁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두자 신시대의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퍼져나갔고 아울러 독일 참모본부는 실력 이상의 명성을 얻었다.
군사·산업간 상호작용의 강화
19세기 말 영국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해군 군비경쟁은 1906년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출현으로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군사에 적용하는 패턴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이런 식으로는 군비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해군측이 실현하고자 하는 성능을 지정해서 민간 군수기업에 개발을 위탁하는 '관제(管制) 기술개발'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것은 20세기에 국가와 모든 민간기업 사이에 유착관계가 생겨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진보 때문에, 장비 선정과 관련해서 해군수뇌부는 판단능력을 상실했고 군수기업도 납품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정부 역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해군 예산을 통제할 수 없어 누진소득세에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야 했다. 명령의 원리가 우위를 차지한 20세기의 '관리경제'는 바로 이 해군군비경쟁을 통해 마치 암세포처럼 19세기 자유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체내에 발생했던 것이다. 이후 각국의 관리경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전 국민을 총동원하여 전시경제체제로 몰아넣었고, 전후에는 무한 군비경쟁을 벌이는 미소냉전시대로 이어졌다.
선택의 기로
오늘날 인류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이것은 너무나도 역설적인 결과였다. 인간은 매 순간 고비마다 끊임없이 합리성을 추구했다. 시장이 발달한 것도, 국민국가를 만든 것도, 전쟁을 벌인 것도, 혁명을 한 것도, 인간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난 천년 동안 인간의 합리적인 노력은 엄청나게 비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즉 합리성을 더 치밀하게 추구할수록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결과에 직면했다. 이제 인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맥닐은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앞으로 인간의 선택은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핵전쟁을 벌여 공멸하든가, 아니면 단일한 세계정부를 세워 일단 핵무기를 제거하고 최소한의 국지적인 전쟁만을 허용하든가.
저자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1917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4∼1939년에 시카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코넬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 군에 입대하여 5년 동안 군복무를 하고 복학, 1947년에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40년간(1947~1987)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유럽 문화와 학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네덜란드 정부재단에서 수여하는 에라스무스 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빼어난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2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는 이 책을 비롯해 이 책의 자매편인 <전염병의 세계사>(Plagues and Peoples)가 있다. 또한 <세계사>(A World History)와 <휴먼 웹>(The Human Web)이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북리뷰
| 제목 | 게재지 | 글쓴이 | 날짜 |
01 | 미국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 책 두 권 출간 | 연합뉴스 | 서한기 | 2005.10.05 |
02 | 전쟁이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 한겨레 | 안수찬 | 2005.10.07 |
03 | 인간의 역사를 바꾼 군사기술 | 동아일보 | 권재현 | 2005.10.08 |
04 | 인간사 물줄기 바꾼 전염병… 전쟁 비합리성 고발 | 세계일보 | 심재천 | 2005.10.08 |
05 | 대재앙 콜레라, 상하수도 시설 바꿨다 | 중앙일보 | 남윤호 | 2005.10.08 |
06 | 전염병과 전쟁의 상관관계 '역사풀이' | 영남일보 | 김봉규 | 2005.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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