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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와 내셔널리즘을 한국의 근대와 민족주의의 ‘대립항’인 동시에 ‘참조항’으로 보고, 근대문화비판의 연장선상에서 근대(국민)국가 일본의 학문·예술·이념을 논구한 보기 드문 ‘일본’ 비평서. 우리나라 일본학의 현주소를 일면 가늠하게 해주는 학문적 성과로서 손색이 없다.
근대 국민국가와 그 전통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명의 결정체라는 통념을 깨고, 그것이 비교적 최근에 와서(기껏해야 150년 전쯤) 발명되었다(만들어졌다)는 주장과 연구가 나오면서 서양의 근대와 내셔널리즘, 나아가 서양을 모방하여 근대에 진입한 비유럽세계에 대한 이해 또한 심화되고 다양해졌다. 따라서 이른바 근대화에 성공한 최초의 비유럽국가인 일본에 대한 연구경향 역시 달라지고 있다. 단순한 선악이분법적인 제국주의 비판에서 탈피하여 국민의 관점, 민족의 관점이 아닌 일상의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국내외 일본학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의 일본학 연구자들이 이런 연구경향을 반영해서 쓴 새로운 ‘일본근대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내셔널리즘이란 아진 분별의 집단적 표출
이 책은 10명의 연구자가 자기 전공분야에 따라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집필한 10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들은 일본의 근대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거창한 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일본에서 서양의 근대 학문과 사상, 예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에 수용되고 변용되고 내면화되는지를 추적하기도 하고, 신도(神道)와 내셔널리즘과 문화유산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독특한 시각에서 고찰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주로 일본의 근대를 특징짓는 정신과 이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근대일본의 내면에 대한 고찰인 것이다. 비록 여기서 한일관계나 두 나라의 비교는 주된 관심대상이 아니지만 각 글에 담겨 있는 공통의 문제의식은 어디까지나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염두에 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관계설정은 ‘국사’(國史)의 관점에서 조금 빗겨나 있다. 일본은 대립항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참조항이기도 하다는 것을 사고의 한 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인식의 전환을 선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그 대신 필자들은 치밀한 학문적 정지작업에 집중하여 세부적으로 의미 있는 글들을 내놓았다.
여기서는 하나하나의 글을 다 일별하기보다는, 그 중에서 근대의 최대 화두라고 할 수 있는 내셔널리즘을 정면으로 다룬 「기억간의 전쟁: 내셔널리즘의 충돌」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위한 첫발을 내딛어보자. 허우성(경희대 철학과 교수)의 「기억간의 전쟁: 내셔널리즘의 충돌」은 내셔널리즘의 본질을 원효의 불교사상을 통해 해부한 아주 유니크한 글이다. 내셔널리즘이 서양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필자도 그것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저자는 내셔널리즘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능에서 배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효의 말을 빌리면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아진(我塵) 분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적)과 나(동지)를 구별하고 나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가 확장되어 민족이나 국가를 형성함에 있어서 그 민족은 대립항을 설정하여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더욱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내셔널리즘이란 아진 분별의 집단적 표출”이라고 정의한다. 사실 이 정의는 대단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내셔널리즘이 역사적 산물이고 국민/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에 대한 해석 내지 설명일 뿐 내셔널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상의 공동체’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 머릿속에서는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여야’ 하면서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대항전만 열리면 거의 광적으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응원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내셔널리즘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에서 간과되어온 내셔널리즘의 심정적 측면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나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동시에 한국방송공사가 만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기획의도도 자가당착의 논리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이순신의 불멸성은 곧 한국 내셔널리즘의 불멸성을 의미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쇄적으로 중국 내셔널리즘도 일본 내셔널리즘도 불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립과 충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당장 간디처럼 적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공존을 모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갖고 있는 아진 분별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하고, 아진 분별의 욕망이 집단적으로 표출될 때는 공멸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을 때, 한국과 일본의 미래에 공존의 길이 열릴 것이다.
저자 윤상인1955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비교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이다. 저서로 『世紀末と漱石』(1994)가 있고, 번역서로 『그 후』(2003)가 있다.박규태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이다. 저서로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히메까지』, 『상대와 절대로서의 일본』 등이 있고, 번역서로 『일본신도사』, 『일본사상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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