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일 일요일

이산의 역사


중국의 고전 <열자>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옵니다. 이 말에서 따온 '이산'이라는 출판사 이름에는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한권 한권 정성들여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언젠가는 '이산'에서 만든 책들이 독자들의 서가와 도서관의 서고를 가득 채워 '책산'을 이루리라는 꿈도 담겨 있습니다.

이산이 걸어온 길

'이산'(移山)은 1996년 8월 8일 세상에 처음 나왔습니다. 이산을 만든 사람은 두 사람이고, 이들은 한 지붕 밑에 사는 부부입니다. 이들은 책을 많이 좋아하고, 대학 졸업 후 해온 일도 책을 만드는 일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도 책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평생 자기들 책을 만들며 살기로 마음 먹고 '이산'이란 출판사를 열게 된 것입니다.

'이산'이란 이름이 탄생하기까지 두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숱한 이름을 서로 떠올려 보고 불러 보고 써 보며 고민을 했습니다. 개중에는 '일산'도 있었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름들이 많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1996년 한여름, 경남 진주에서 고향 삼천포로 가는 완행버스에서였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얼마 전에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신영복 선생의 책을 언급하여 그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했고, 또 한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선생의 호가 '쇠귀'(牛耳)임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다가 '우'(牛)자로 시작하는 고사성어가 뭐가 있나 하나씩 떠올리다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성어에 딱 멈췄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긴다." 우리가 가슴에 새기고 '출판의 의지'로 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공은 출판사 이름으로 쓰기엔 약간 투박해서 생략하고, 이산이 발음하기도 쉽고 어감도 좋아 '이산'으로 정했습니다.

사람들이 산을 가리켜 이산, 저산이라고 부를 때 '이산'이라고 친숙하게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고, 두 개의 산이라고 생각해도 이산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부부이니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무슨 책을 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장흐름도 조사해보고 출판의 트렌드도 파악해보는 등 이런저런 고민 끝에 거창하게 종합출판보다는 한 분야를 파고드는 것이 현명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문화인류학 책을 내볼까,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전기를 내볼까도 고려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계기가 됐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을 내보는 것으로 구체적인 가닥을 잡았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비교적 잘 알고 있고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분야였기에 그런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의 책을 낼 것인지가 정해지니 그 다음 일은 척척 잘 진행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을 전문으로 내겠다는 출판방향 아래 어떤 모양의 책을 만들까를 연구했습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인문과학서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편집자인 만큼 충실한 내용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꾸민 고급 교양서를 내고 싶었습니다. 표지는 약간 터실터실 순박한 동양미를 은은히 풍기면서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말똥종이를 쓰기로 했습니다. 제본은 양장과 페이퍼백의 절충형태를 취하여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가벼워 보이지도 않는, 기품이 있는 반양장본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본문 편집은 여백을 살리고 서체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여 담백하고 깔끔하게 레이아웃했습니다.

주위의 우려와 격려 속에 1997년 7월 25일, 드디어 첫 책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가 나왔습니다. 연전에 어떤 주말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남편이 영화감독인데, 첫 영화가 개봉되는 날 부부가 극장 앞에서 사람이 들까 안 들까 초조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책에 대한 학계와 언론계의 평가도 좋았고,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열독해주셨습니다. 이어서 <도쿄이야기>가 나왔고 <도쿄 이야기>는 주요 일간지들의 서평란 톱 면을 장식하는 이변을 일으켰고 수려한 표지와 본문 디자인으로 편집자들의 참고용 도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2~3개월마다 한 권씩 나와서 2005년 3월 현재 <실크로드 이야기>, <논어>(이산동양고전01), 20세기의 역사(히스토리아문디 01), 아프리카의 역사(히스토리아문디 02), <전장의 기억>, <리오리엔트>, <화려한 군주>, <원시적 열정>, <장안의 봄>,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현대일본을 찾아서>, <세계의 역사><유방> <휴먼 웹> <이슬람의 세계사 1,2><녹주공안> <멩켄의 편견집>까지 모두 64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이산의 책
1.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2. 도쿄 이야기 3. 로마에서 중국까지 4. 중국의 ‘자유’ 전통 5. 근대 일본의 천황제 6·7. 현대 중국을 찾아서 8. 천안문 9.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10.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11. 그림 속의 그림 12. 전원시와 광시곡 13. 칸의 제국 14. 번역과 일본의 근대 15. 중국영화사 16. 강희제 17. 옹정제 18.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20. 베이징 이야기 21.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22. 왕 여인의 죽음 23. 전장의 기억 24. 리오리엔트 25. 린 마을 이야기 26. 화려한 군주 27. 내셔널리즘 28. 세계화의 원근법 29. 원시적 열정 30. 장안의 봄 31. 반역의 책 32·33.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34. 창힐의 향연 35. 쾌락의 혼돈 36. 디아스포라의 지식인 37. 현대일본의 역사 38. 번역과 주체 39. 문답으로 엮은 교양중국사 40·41. 현대일본을 찾아서 43. 근대일본의 발명 44. 신의 아들 훙슈취안 45. 명청시대 사회경제사 46. 유방 47. 달라이라마의 나라 티베트 곧 48. 중국을 바꾼 서양인들 49. 녹주공안--청조지방관의 재판기록 50. 룽산으로의 귀환

이산동양고전
1. 논어 이산

히스토리아문디
1. 20세기의 역사 2. 아프리카의 역사 3.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4. 전염병의 세계사 5. 전쟁의 세계사 6.7. 세계의 역사 8. 휴먼 웹 9. 중세의 사람들 10,11. 이슬람의 세계사 12.링컨의 연설과 편지 13.멩켄의 편견집

이산탐방 기사모음


조선일보             2010.01.08
인터파크 도서     2008.02.29
주간조선             2005.12.13
YES24               2001.09.01
MBC 아침뉴스    2001.08.16
송인소식             2001.06.15
YES24               2001.04.04
한겨레21             2001.03.08
북토피아             2000.07.31
경향신문             2000.04.13
한겨레신문          2000.03.05
웹매거진 부꾸      2000.02.
오늘의 책             1999.09.11
조선일보              1999.03.05
중앙일보              1998.04.17
도서신문              1998.04.06
뉴스플러스           1997.11.13

히스토리아문디13 멩켄의 편견집

멩켄의 편견집
H. L. 멩켄 지음/김우영 옮김
2013년 6월 30일 발행/480쪽/값 20,000원 
ISBN 978-89-87608-71-6

마천루, 할리우드, ‘위대한 게츠비’로 표상되는 아메리칸 드림이 넘실대던 1920년대 전반의 미국.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이란 사실상 신기루에 불과했다. 금주법, 마피아, 검열, KKK단으로 표상되는 광기와 폭력, 부정과 부패, 억압과 차별이 신기루에 가려진 미국 사회를 유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도한 물질문명과 일그러진 욕망의 도가니 속에서 분연히 펜을 들어 대중의 우행(愚行)을 통렬히 비판하고 세상의 온갖 위선을 조롱하면서, 자유와 책임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적 성숙을 역설했던 위대한 언론인 멩켄이 남긴 불후의 명작.

멩켄은 이 모든 세대(世代)의 교양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월터 리프먼(『여론』의 저자)
멩켄은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미국문학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나는 그가 한 말에 놀라는 게 아니다. 도대체 그말고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할 용기를 내겠는가.
―리처드 라이트(『미국의 아들』의 작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언론인, 멩켄
멩켄만큼 20세기의 미국인과 미국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언론인은 없었다. 비록 뉴욕이나 워싱턴의 메이저 신문이 아닌 볼티모어의 지역신문에서 평생 기자생활을 했지만, 그가 쓰는 기사와 칼럼은 미국의 수많은 신문에 재게재되어 전국민이 애독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일개 신문기자가 이렇게 대중의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가 독신을 청산하고 결혼을 발표했을 때는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신문이 1면 기사로 보도할 정도였고, 말년에는 언론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뉴스위크』지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언론인은 아니었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늘 대중의 우행(愚行)을 질타했다. 그러나 그의 비평에는 솔직함과 진정성이 담겨 있었기에 당대의 많은 미국인들은 세상의 위선을 가차 없이 조롱하는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그 특유의 거친 익살과 풍자로 엮어낸 언어의 유희에서 새로운 개안(開眼)의 즐거움과 교훈을 얻었다.

편견 없이 『편견집』 읽기
국내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멩켄의 『편견집』이 쓰인 시기는 1920년대 전반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미국만은 미증유의 자본주의적 번영을 누리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번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광기와 무법, 억압과 차별이 미국 전역에 만연해 있었다. 멩켄은 이런 야만적인 상황이 미국 주류사회(앵글로색슨계 미국인)의 시대착오적인 보수성과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망상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고 진단한다. 이러면 상투적인 양비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멩켄의 논조에는 양비론으로 환원할 수 없는 확고한 입장과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성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으면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야유를 퍼부었다. 예컨대 그의 눈에는 그리스도교 전도사나 도덕향상운동가나 사회주의자나 매한가지였다. 그 대상이 영혼이 됐든 사회가 됐든 몸이 됐든,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 데, 이들은 마치 돌팔이 의사처럼 자기가 완벽한 치료법을 갖고 있는 양 떠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정체성
『편견집』의 다종다양한 에세이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 될 것이다. 멩켄은 미국이 천박한 삼류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에 환멸을 느끼고 유럽으로 이민이나 망명을 하는 지식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이 에세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장판 같은 미국 땅에 남아 미국인으로 사는 행복을 익살스럽게 설명하는데, 그 이유가 참으로 걸작이다. 이와 함께 미국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또 한 편의 에세이가 「농부」이다. 「농부」의 논조는 우상파괴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칭송되는 농민의 전통적인 미덕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의 본질은 단순히 농민에 대한 악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미국 농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인종주의․지역주의․이기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미국사회의 만화경
『편견집』의 에세이들은 미국의 문학, 언론, 정치, 종교, 철학, 예술을 비롯해서 인물평, 성(性), 결혼, 자살, 사형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멩켄은 이런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를 통해서, 미국문화의 새로운 기운과 성숙을 가로막는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풍조에 일침을 가한다. 몇 가지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에는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월트 휘트먼이 내무부 하급 공무원으로 일할 때, 신임 내무장관 제임스 할런은 휘트먼이 『풀잎』의 저자임을 알고는 휘트먼을 곧바로 해고했다. 『풀잎』이 외설스러운 시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멩켄은 「불멸의 세 미국인」에서 할런을 이렇게 추모한다. "이 사건과 이 사람 할런을 기억해두자. 할런은 그냥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1년에 한 번은 교회에 가서, 1865년의 어느 날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과 최악의 꼴통을 한 장소에 있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지금은 환경운동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스콧 니어링 박사가 젊은 시절 급진적인 경제학자로서 개혁사상을 설파하다 대학해서 해고된 적이 있는데, 멩켄은 「우울한 학문」이라는 에세이에서 이것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멩켄은 니어링의 이념에 동의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니어링이 신중하지도 온건하지도 정통파에 속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추방된 것이라고 잘라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급진주의자가 아니라 보수적인 정통파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아마추어 경제학자들, 주로 사회주의자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 나라에 유포시킨 일부 교의보다 사실관계가 의심스럽고 논리가 엉성한 교의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나는 고생스럽게 그것을 비판하는 책까지 썼다. 나의 확신과 본능은 그 반대편에 있다. 그러나 유식한 교수들이 정말로 완벽하고 절대적인 학문의 자유를 갖고 있음을 내가 확신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이따금 자기의 직업, 강의일정, 책판매, 은신처를 걱정하지 않고 소신껏 다른 방침을 취하는 모습을 내가 상상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확신과 직감 속에서 훨씬 큰 안락감을 느낄 것이다." 
순교자들에 대한 풍자는  거의 포복절도할 수준이다. 「젊은이에게 주는 충고」라는 에세이 중 󰡐순교자󰡑라는 소제목이 붙은 글에서, 멩켄은 종교에 목숨 거는 것보다 실리를 챙기는 게 장땡이라는 충고를 해준다. "누가 1903년산 라우엔탈 포도주 1병을 준다고 하면,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종파의 세례도 기꺼이 받을 용의가 있다. 단 나의 볼품없는 알몸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조건은 붙여야겠지만 말이다. 만약 10병을 준다면, 나는 세례뿐 아니라 견진성사까지 받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관한 한 나는 배짱이 두둑하다. 거짓말 몇 번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멩켄 시대의 미국인도 오늘날의 우리나라 국민들 못지않게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멩켄은 「정치인」이라는 에세이에서, 정치에 열 받지 않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조금 길게 인용해본다.
"미국인은 잘못된 가정(假定)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정치라는 중대한 일에 대해서 건전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과 불행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잘못된 가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인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이 중 한 부류는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가정이다. ……사실 정치인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가정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한 부류가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는 가정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하에서 좋은 정치인은 정직한 강도만큼이나 상상하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이다. ……정치인은 기껏해야 필요악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거의 견디기 힘든 성가신 존재이다.
……우리는 악순환에 빠진 것 같다. 불쌍한 납세자들은 한 거대 정당의 정치인들에게 약탈당하고, 다른 거대 정당의 정치인들에게 속은 다음, 프리랜서 불량배 집단, 즉 무소속 후보나 진보주의자나 개혁가 등에게 표를 던진다. 사실 명칭은 중요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 후 이 신사들에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약탈당한 납세자들은 절망하여 노회한 정치꾼에게 돌아가고, 또 다시 뜯긴다.
……나는 잘못된 가정(假定)이 철저히 배제된 선거를 상상해본다. 선거당일에 유권자들이 자신의 선택은 천사와 악마, 선인과 악인, 이타주의자와 야심가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두 명의 솔직한 수완가, 즉 그럴 듯한 헛소리를 남발하는 달변가와 조용한 행동가, 다시 말해서 셔토쿼 운동 강사와 좀도둑 사이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투표장에 가는 선거를."

카타르시스의 향연
우리말 표현 가운데 언론에 종종 사용되는 속된 말이 하나 있다. '까다'가 그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신네 신문은 까질 않아서 안 돼." "요새 엄청 까고 있어요." "깔 때는 깝니다." 그렇다. 저널리즘적인 글쓰기의 핵심은 '까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멩켄의 '까기'는 거의 예술이다. 문학용어를 사용해서 약간 고상하게 말하면, 독자한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리고 하나 더, 멩켄은 '까기'만 잘한 것은 아니다. 칭찬도 예술 수준이었다. 그 중의 어떤 칭찬은 멩켄 자신이 받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주어만 바꾼다면.
"모든 가치를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편견집』이야말로 견실한 예술가, 대단히 지적이고 용감하고 독창적인 인간으로 판명될 한 미국인이 남긴, 그리고 한때 그를 제거하려고 유치한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던 꼴통들과는 격이 다른 한 작가가 남긴 필생의 역작이다." 
저자 

히스토리아문디12 링컨의 연설과 편지

링컨의 연설과 편지
에이브러햄 링컨 지음/김우영 옮김
2012년 2월 18일 발행 /280쪽/값 18,000원
ISBN 978-89-87608-70-9

링컨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책은 링컨이 남긴 연설문과 편지 중에서 많이 인용되고, 중요한 의의를 갖는 글들을 링컨의 전 생애에 걸쳐서 골고루 가려 뽑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보다 충실한 독서가 될 수 있도록 각 연설과 편지에 해제를 덧붙였고, 본문에서는 역사적 용어나 사건 혹은 인명에 대한 각주를 달아 당대의 정치적 현안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권말에는 따로 전기를 읽지 않아도 링컨의 삶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상세한 연보도 추가했다.

● 편집자 서평
전기는 많은데……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제라는 정체(政體)가 생겨난 이래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미국을 비롯해서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모든 나라의 대통령들이나 장차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설 무렵 링컨 전기를 출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서점과 도서관에는 어린이용에서부터 어른용에 이르기까지 링컨 전기가 수두룩하다. 이는 마치 공자를 이해하려는 열망은 큰데 정작 「논어」는 읽지 않고 공자의 전기만 보는 격이다. 전기를 읽는 것도 좋지만 어떤 인물의 참모습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고 할 때는 그 사람의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게다가 링컨처럼 굴곡지고 드라마틱한 생애를 산 대통령의 전기는 그것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이상 결국에는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링컨의 전기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어떤 때는 내셔널 내러티브로, 어떤 때는 성서적 내러티브로, 또 어떤 때는 정의와 민주주의의 내러티브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링컨은 신화 속의 비극적인 영웅과 닮아 있다. 미천한 출신(또는 출생의 비밀), 고난의 극복, 사랑, 전쟁과 승리, 승리의 순간에 찾아온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영웅신화의 모티프와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화화된 영웅 링컨을 잊고, 링컨 자신의 말과 글을 통해 그의 참모습을 찾아보자.

더 나은 번역을 위한 노력의 결실
지금까지 우리말로 번역된 링컨의 연설집은 두 종류가 나왔지만 아쉽게도 모두 절판되었다. 그런데 그 책들이 절판된 사실보다 더 아쉬운 것은 두 책이 30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히 이와나미 문고의 일역판 『링컨 명연설집』을 중역한 책이라는 점이다. 잘된 중역은 안 좋은 원문 번역보다 나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하더라도 같은 일역본의 중역이 30년 간격으로 두 번이나 나왔다는 것은 의아스럽다. 더구나 일역본이 안고 있는 한계를 그대로 답습한 채 말이다. 먼저 일역본에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발췌 번역이 많아 글의 전모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나 더 지적하면 링컨의 저 유명한 「선거운동을 위해 쓴 자서전」(122쪽)의 경우 링컨은 3인칭 관점으로 서술했는데도 일역본에는 1인칭 관점으로 의역이 되어 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 국내에서 번역되거나 인용된 링컨의 자서전은 죄다 1인칭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의역 자체가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3인칭 관점이 1인칭 관점으로 바뀐 사실에 대한 언급이 어디에도 없다는 데 있다. 반면에 이 책의 독자들은 더 나은 번역을 위한 작은 노력들이 하나둘 쌓여서 어떤 번역의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링컨이 남긴 연설문과 편지 중에서 많이 인용되고 중요한 의의를 갖는 글들을 링컨의 전 생애에 걸쳐서 골고루 가려 뽑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 책 정도면 링컨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부족함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도 링컨 당대의 정치적 현안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링컨의 연설이나 편지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점을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각 글의 본문 앞에 해당 연설이나 편지에 대한 해제를 붙였고, 본문 안에서는 역사적 용어나 사건 혹은 인명이 나올 때마다 각주를 달아 설명했다. 그리고 권말에는 링컨 연보를 더하여 링컨의 일생을 연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연보는 굳이 다른 전기를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실하므로 본문을 읽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연설과 편지로 만나는 링컨의 참모습
링컨의 생애 첫 연설문 「생거먼 카운티의 유권자 여러분께」에서 시작하여 죽기 한 달 전쯤에 쓴 「제2차 대통령 취임사」까지 죽 일독하다 보면 링컨이 연설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했는지 알 수 있다. 링컨의 연설은 단순한 정견발표의 수단이 아니었다. 때로는 간절한 호소였고,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이었고, 때로는 인생고백이었고, 때로는 작별인사였다. 그는 연설계획이 잡히면 열심히 연설문을 준비했고, 설령 원고가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즉석에서 멋진 연설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사자후를 토하며 대중을 압도하거나 선동하는 웅변가는 아니었지만 청중들은 그의 연설에 마음 깊이 감동했다. 링컨의 연설에는 장광설이나 공허한 구호 대신 겸손과 휴머니즘과 문학의 향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우리는 적이 아니라 벗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이 되면 안됩니다. 아무리 감정이 상했다 하더라도, 우리를 묶어주는 애정의 끈을 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신비로운 기억의 현(弦)이 모든 전장과 애국자의 무덤에서부터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가정에 이르기까지, 이 광대한 국토를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이 현이 머지않아 우리의 본성에 잠재해 있는 천사의 마음으로 다시 매만져질 때, 연방을 찬양하는 노래가 힘차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링컨은 연설을 통해 늘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그의 신념, 즉 연방유지와 노예제 폐지에 대한 소신은 확고부동했고,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되고 나서나 한결같았다. 그러나 이 신념이 링컨만의 창작물은 아니었다. 그의 신념의 이면에는 세 가지 정신적 지주가 있었다. 독립선언서, 미국헌법, 성서가 그것이다. 링컨은 한 즉석연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이 연방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시켰던 대원칙이나 사상이 도대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자문해보곤 합니다. 식민지가 모국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연방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 땅의 인민에게 자유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미래 세대에게 자유를 부여하고자 했던 독립선언서의 정신 덕분이었습니다.(박수갈채) 머지않아 모든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부담이 사라질 것이라고, 또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될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도 독립선언서였습니다.”
지금은 노예해방이 링컨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고 있지만, 링컨 시대의 궁극적인 목적은 연방유지였고, 그것을 위한 하나의 방책이 노예제 폐지였다.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하나는 전면적 노예해방, 두 번째는 노예를 해방하는 노예소유주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방안, 세 번째는 노예를 해외로 이주시키는 방안 등이다. 링컨은 내전을 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두 번째 방안에 가장 큰 무게를 두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전면적 노예해방을 추진하게 된다. 연방유지만을 위해서라면 노예제 폐지를 일단은 유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링컨이 전쟁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노예해방을 관철시킨 데는 자유의 이념에 대한 개인적 확신이 크게 작용했다. 한 언론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투쟁에서 제가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보존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의 노예도 해방시키지 않더라도 연방만 구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야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노예의 일부만 해방시키고 나머지는 그대로 둠으로써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역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제가 노예제나 유색인종에 대해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연방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직무상의 의무에 대한 저의 생각에 따라서 저의 목적을 밝힌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때때로 표명해온 저의 개인적인 소망, 즉 모든 사람이 어디에 있든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링컨 따라하기에서 링컨 넘어서기로
링컨은 변호사 업무와 정치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모든 연설문을 직접 공들여 집필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그렇게 했다. 링컨의 말과 글은 늘 일관성이 있고, 합리적이었으며, 현실적이었다. 비전의 제시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장밋빛 전망도 간혹 이야기했지만 보통은 절제하는 편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확실히 링컨은 시류에 편승하는 대다수 정치인과는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링컨 이후 그에 비견될 만한 대통령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그의 위대성을 자꾸 현재화하다 보면 수많은 전기들이 말해주듯 이런저런 담론만 양산하게 된다. 진부한 말이 될지 모르겠으나, 이제 링컨의 인격은 링컨이 쓴 글에서 찾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야만 링컨 따라하기가 아니라 링컨 넘어서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히스토리아문디10.11 이슬람의 세계사 1.2

이슬람의 세계사 1
아이라 라피두스 지음/신연성 옮김
2008년 12월 6일 발행/768쪽/값 33,000원
ISBN 978-89-87608-66-2

이슬람의 세계사 2
아이라 라피두스 지음/신연성 옮김
2008년 12월 6일 발행/800쪽/값 33,000원
ISBN 978-89-87608-67-9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이슬람 사회의 역사적 기원과 그 진화과정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이 책은 이슬람 역사와 문명을 공부하는 학생과 지식인의 필독서이자 이슬람 역사의 결정판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는 1권에, 3부는 2권에 해당한다. 1부는 코란의 계시에서부터 13세기까지 이슬람 문명의 형성기를 다루고, 2부는 중동에서 생겨난 이슬람 사회의 전형이 세계 각지로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 편집자 서평
이슬람에 대한 인식의 전환
우리는 ‘이슬람’ 하면 종교, 그것도 아주 과격한 종교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이슬람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극히 최근에 형성된 것이다. 불교나 그리스도교 같은 다른 세계종교와 비교해보더라도 우리와 이슬람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이상하리만치 소원한 상태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세계사적 흐름과 맞물리면서 우리는 서양문명에 의해 굴절된 이슬람과 조우하게 되었다. 당시 세계를 주도한 미국과 서유럽은 ‘공산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서양 그리스도교 문명에 위협을 가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로 간주했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과 함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협은 자연스럽게 줄어든 반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그리스도교 문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부각되었다. 이런 정황에 부응하여 적어도 우리는 이슬람에 관한 한 경제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먼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세계화와 2001년 9·11사건은 우리와 이슬람의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물자교류뿐만 아니라 인적인 상호교류가 더욱 증대하면서, 우리 자신이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 표적이 되기까지 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런 만큼 이제는 피상적이고 굴절된 이슬람 이해가 아니라 보다 객관적이고 폭넓은 시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아이라 라피두스는 이슬람이란 종교, 제도, 문화, 사상, 법, 도덕, 생활양식 등을 모두 가리키는 문명의 총체라고 말한다. 따라서 E.H. 카 식으로 표현하면 이슬람의 역사는 종교적 상징과 일상적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이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처음 시작된 대화는 전 세계로 공간을 확장해가면서 현재까지 1,30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어떤 대상을 역사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 대상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탐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 책의 목적은 이슬람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의 신앙, 제도, 정체성이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비교론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역사를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않은 채 눈앞의 현상만 가지고, 혹은 그리스도교 문명에 의해 굴절된 이미지만 가지고 이슬람 전체를 재단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는 1권에, 3부는 2권에 해당한다.
1부는 코란의 계시에서부터 13세기까지 이슬람 문명의 형성기를 다룬다. 이 시기에 부족-민족문화, 종교문화, 궁정-귀족문화의 복합체가 탄생했고, 이후에 생겨난 모든 이슬람 문명은 이 복합문화의 변형이다. 특히 이슬람 문화가 상당 부분 고대 중동사회의 전통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슬람의 교리와 문화시스템이 10∼13세기에 중동사회의 작동원리로 변용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2부는 중동에서 생겨난 이슬람 사회의 전형이 세계 각지로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슬람은 아랍중동, 중앙아시아, 중국, 인도, 아프리카, 발칸에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종교로 발전했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와 각 지역의 문화 및 사회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아울러 무굴제국,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에서 이슬람 정권이 공고해지는 과정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슬람 국가가 등장하는 과정을 검토하고, 이들 국가가 정치체제와 이슬람 종교제도, 이슬람과 무관한 고유의 가치와 공동체의 형태를 통합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18세기 이래 오늘날까지 이슬람 제국의 붕괴, 경제적 쇠퇴, 이슬람 내부의 종교분쟁으로 인해, 그리고 유럽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지배가 확립됨으로 인해 이슬람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었는지를 보게 된다. 동시에 이런 위기는 국민국가, 농업의 근대화, 산업화, 계급구조의 변화, 세속적 내셔널리즘과 근대적 이데올로기 등을 수용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격변은 순조로운 근대적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끊임없는 내부갈등이라는 불행한 운명으로 치달았다.

이슬람의 부흥
근대 이슬람 세계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이슬람 부흥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이슬람의 조류가 생겨났다. 여기에는 주로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포괄하는 스펙트럼이 훨씬 넓고 운동의 지향성도 다양하다. 예컨대 철학이나 종교사상을 연구하는 학파,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운동, 이슬람의 전통을 개혁하고자 하는 교육운동도 여기에 속한다. 부흥운동단체의 정치활동은 주로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는 정당의 형태를 띠지만, 준군사조직을 거느린 단체도 있으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암살이나 폭파 같은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도 있다. 또한 자국 내에서만 활동하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국제적인 연대를 추구하는 단체도 있다. 이외에 문화적으로는 서양의 대중문화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슬람 부흥운동은 이슬람이 근대적인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나아가 이슬람 국가의 세속화를 막고 포스트모던한 이슬람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슬람 부흥운동의 한 축인 포교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슬람 신앙의 공통성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초국적인(transnational) 이슬람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인 이슬람 운동단체들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알카에다 같은 글로벌한 테러조직이 그 좋은 예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 부흥은 여성문제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쟁을 유발했다. 특히 여성의 베일 착용 문제는 핵심쟁점이 되고 있다.

이슬람의 미래
이 같은 다양한 이슬람 부흥운동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이슬람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무슬림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종교적 충성과 이슬람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이 이 같은 자신의 역사적 원형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낙관할 수 없다. 글로벌한 경제가 점점 확대되고 신이슬람주의―이슬람 고유의 다양성이 제거되고 국민통합 같은 고도의 정치적 기능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진 새로운 유형의 이슬람 담론―가 대두하는 현대세계에서 전방위적으로 이슬람 사회를 압박하는 경제력·정치력·기술력에 맞서서 무슬림이 과연 역사적 원형을 간직한 이슬람 사회를 계속해서 만들어낼지, 아니면 결국에는 현실에 굴복하여 자신의 유산을 포기할지, 그것은 아직은 미지수로 남아 있다.

저자 아이라 M. 라피두스(Ira M. Lapidus)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러시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 선생님의 권유로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여 중동과 이슬람의 역사를 전공하게 되었다. 1958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1964년에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역사학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같은 대학 내 중동학센터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오늘날 가장 탁월한 이슬람 역사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는 버클리 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이다. 저명한 사진가이자 여행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대표작인 이 책 외에 Islam, Politics, and Social Movements(공편, 1988), Contemporary Islamic Movements in Historical Perspective(1984) 등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이 책을 읽지 않고 이슬람을 논하지 말라프레시안서정민2008.12.27
02  메카에서 인도네시아까지…이슬람 역사서 결정판한겨레고명섭2008.12.12
03  이슬람을 종교가 아닌 문명의 총체로 이해할 것부산일보권재현2008.12.13
04  이슬람 사회의 역사적 기원은…세계일보조정진2008.12.12
05  이슬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경향신문김주현2008.12.12
06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이슬람사회의 역사세계일보강인황2009.03.27
07  이슬람 문명의 비밀을 파헤친다연합뉴스송광호2008.12.12

히스토리아문디09 중세의 사람들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 파워 지음 / 김우영 옮김
2007년 10월 27일 발행/288쪽/값 15,000원
ISBN 978-89-87608-63-1

서양의 중세시대에 살았던 평범한 여섯 사람, 샤를마뉴 치세 프랑크 왕국의 농부 보도, 베네치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수녀원장 마담 에글렌타인, 파리의 중간계급 가정주부, 잉글랜드의 두 상인(한 사람은 양모무역상인, 또 한 사람은 모직물제조판매업자)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는 종교적이고 무겁고 어두운 중세의 이미지를 찾기 힘들다. 대신 중세사람들의 땀 냄새와 사랑과 욕망과 일상이 전편에 배어 있어 누구나 아기자기한 역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 편집자 서평
사회경제사의 고전
사회경제사가 역사학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것의 시작은 근대 자본주의가 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문제의식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역사가들은 중세사회에 주목한다. 자본주의가 어느 날 문득 땅에서 솟아난 것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닌 이상 결국 그 기원을 전(前) 시대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사가들은 그동안 그리스도교와 봉건제로 대표되는 암흑시대 중세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 성직자나 영주나 기사의 신앙이나 무용담이 아니라 실제로 생산과 유통을 담당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의 역사적 역할을 탐구했던 것이다. 이 책 『중세의 사람들』은 바로 그 새로운 시각으로 쓰인 사회경제사의 한 전형 같은 역사서로서, 지금은 사회경제사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서양중세사의 기본텍스트로 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초판이 출판된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완역되었지만, 의외로 비전문가인 학생과 일반인도 적지 않게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이 책 1장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책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쉽게 눈에 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6명의 주인공은 중세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그 면면을 보면 샤를마뉴 치세 프랑크 왕국의 농부 보도, 베네치아의 상인 겸 여행가 마르코 폴로,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수녀원장 마담 에글렌타인, 파리의 중간계급 가정주부, 잉글랜드의 두 상인(한 사람은 양모무역상인, 또 한 사람은 모직물제조판매업자) 등이다. 그중에는 마르코 폴로처럼 너무나 유명한 사람도 있고 수년원장도 한 사람 있지만, 모두 중간계급 이하의 사람들이다. 저자 아일린 파워는 이런 사람들이 중세사회를 떠받치고 변화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중세는 결코 ‘암흑시대’라는 말로 단순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알게 되는 중세 사람들의 삶은 아주 다채로울 뿐 아니라 역동적이다. 그 만큼 이 책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당연히 독자들도 부담 갖지 않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단, 이 책이 일종의 ‘민중사’로 분류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물론 민중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 면면에서 보듯 우리의 민중 개념보다 사회적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더욱이 우리의 민중 개념은 이념형에 가까운 피지배계급 일반을 나타내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평범한 사람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사회사는 간혹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또한 저명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사에 비해 전문가와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실제로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생활을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자료는 노르망디 공(公) 로베르나 에이노의 필리파의 역사를 쓰는 데 필요한 자료 못지않게 풍부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복원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은 유명인사의 그것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결코 재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사가 개인 위주의 서술방식에 특히 잘 어울린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류의 역사서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단순히 하나의 시대를 뭉뚱그린 일반화한 설명이 아니라 손에 잡힐 것 같은 생생한 기록의 제시이자 개인의 삶을 통한 역사의 재구성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양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우선 6명의 주인공 중에서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이 3대 3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내용에서 남녀관계가 반드시 등장한다. 사실 최근의 역사연구에서조차 (여성사를 제외하면) 여성을 남성과 같은 비중으로 다룬 역사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20세기 초반에 그것도 중세사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여성의 삶과 일상을 소개했다는 것은 대단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여성으로서 역사가로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의미
이 책은 서양의 중세를 이해하는 데 최적의 입문서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개론적인 지식 이상의 것, 즉 역사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저자가 직접 대답해주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은연중에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대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의 답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저자 아일린 파워(Eileen Power)
1889년 잉글랜드 북서부의 소도시 올트링엄에서 한 주식중개인의 장녀로 태어났다. 옥스퍼드 여자고등학교와 거턴 칼리지 그리고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다. 1913년부터 1921년까지 거턴 칼리지의 역사학 조교를 지낸 후, 런던정경대학 강사(1921∼1924), 런던대학 전임강사(1924∼1931)를 거쳐 1931년에 런던정경대학 교수가 되었다. 1937년에는 역사학자 마이클 포스턴과 결혼했고, 이듬해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사 교수가 되었다. 이 무렵 아일린 파워는 영국 최고의 역사학자로서 명성을 누렸다. 당대에 그의 명성에 견줄 만한 역사가로는 R.H. 토니와 아널드 토인비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을까. 20세기의 가장 탁월했던 이 여성 역사학자는 1940년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오늘날 사회경제사의 고전이 된 『중세의 사람들』 외에 Medieval English Nunneries(1922), Studies in English Trade in the 15th Century(1933), Cambridge Economic History vol.1(1940) 등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중세의 사람들연합뉴스김승욱2007.11.05

히스토리아문디08 휴먼 웹: 세계화의 세계사

휴먼 웹: 세계화의 세계사
존 맥닐·윌리엄 맥닐 지음/유정희·김우영 옮김
2007년 7월 21일 발행/496쪽/값 22,000원
ISBN 978-89-87608-61-7

윌리엄 맥닐과 존 맥닐 부자(父子)는 유사 이래 인간을 상호작용과 교환의 패턴 안에 모여들게 한 복수(複數)의 웹을 탐구한다. 작든 크든 느슨하든 타이트하든 이들 웹은 사상·상품·권력·돈이 문화와 사회와 국가라는 틀 안에서 또는 그 경계를 넘어 이동하게 하는 매개수단을 제공해왔다. 일체의 환경적·문화적 결정론을 멀리하면서, 맥닐 부자는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며 간결한 설명을 통해 세계사의 큰 흐름에 대한 종합적인 그림을 펼쳐 보인다.

● 편집자 서평
이 세계가 어떻게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만 많은 역사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해, 이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다양한 역사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던 고집 센 두 부자(父子) 역사가가 함께 쓴 세계사.
상호작용의 웹을 통해 본 인류역사
이 책에서 말하는 웹(Web)이란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는 연결장치이다. 이 연결장치는 우연한 만남에서 가족관계, 친구관계, 종교, 문화교류, 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띤다. 사람들은 이런 모든 관계 속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교환된 정보를 이용하여 앞날을 준비한다. 그리고 웹에서는 유용한 사상, 기술, 인력, 물자만 교환되고 전달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질병·잡초·해충처럼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교환된다. 바로 이런 정보, 물건, 해로운 것 등의 교환과 확산, 그리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역사를 형성하는 요인이다. 한편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은 주변환경을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어가려는 인간의 야망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혹은 정신적인 야망의 수준은 자기가 갖고 있는 정보와 사상과 선례에 좌우된다. 따라서 웹은 인간의 일상적인 야망과 행동을 규정하고 조정해 왔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휴먼 웹은 적어도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한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인류의 먼 조상들은 소규모 집단 속에서 서로 의사를 소통하고 정보와 물건을 교환함으로써 사회적 결속을 다졌다. 아울러 산발적이긴 하지만 집단 간의 교류와 커뮤니케이션도 있었다. 인류의 조상이 세계 각지로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오늘날까지 같은 종(種)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집단들 사이에서 유전자와 배우자가 교환되었다는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먼 옛날 활과 화살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은 유용한 기술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전수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것은 느슨하고 광범위하며 상당히 오래된 커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 즉 최초의 월드와이드 웹이 존재했음을 입증해주는 좋은 예이다.
약 1만 2000년 전 농경의 시작과 함께 인구가 점점 조밀해지자 이전의 느슨한 웹 속에서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새로운 소규모 웹이 형성되었다. 이런 과정은 농경이나 어로가 발달하여 정착이 가능했던 지역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층 타이트한 웹은 그 범위가 지역적이고 지방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쯤 마침내 이 지역적이고 지방적인 복수(複數)의 웹 가운데 일부는 도시가 발달하면서 더욱 타이트한 웹으로 변해갔다. 도시는 교차로이자 정보, 물자, 감염증의 저장고 역할을 했고, 새로운 웹은 도시와 도시 혹은 도시와 그 배후지를 연결하는 상호작용에 바탕을 둔 메트로폴리탄 웹으로 확장되었다.
최초의 메트로폴리탄 웹은 약 6천년 전에 시작된 고대 수메르 도시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일부 메트로폴리탄 웹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거나 다른 메트로폴리탄 웹에 흡수 또는 병합되었다. 어떤 메트로폴리탄 웹은 한때 번영을 누리다가 결국에는 쇠망해버렸다. 이처럼 웹의 건설과정에는 수많은 반전이 있었다.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아우르는 최대 규모의 올드월드 웹은 수많은 작은 웹이 단계적으로 결합하여 약 2천 년 전에 형성되었다. 지난 500년 동안 활기를 띠었던 대양 항해는 전세계에 산재하는 메트로폴리탄 웹을 단일한 코즈모폴리턴 웹으로 통일시켰다. 비록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경험하긴 하지만 오늘날 모든 이들은 단일한 글로벌 웹, 즉 하나의 커다란 협력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갖가지 웹이 서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인류역사의 아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딜레마
모든 웹은 협력을 하기도 하고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인간집단은 가족이든 씨족이든 국가든 사회든 기업이든 군대든 자신의 대오 안에서 효율적인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을 성취하는 가운데 자신의 경쟁력과 생존 가능성을 높여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협력이 커질수록 그 사회는 부강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가 계층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즉 웹이 확장될수록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은 부와 권력과 불평등을 동시에 초래하게 된 것이다. 적대적인 경쟁 역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또 다른 협력과 권력의 집중을 조장했다. 보다 효율적인 집단이나 개인은 덜 효율적인 집단이나 개인을 희생시킴으로써 더 많은 자원과 재산과 추종자를 획득했다. 그리하여 역사의 대세는 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해서든 경쟁을 통해서 더 큰 사회적 협력구조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웹이 커질수록 웹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최초의 월드와이드 웹 안에서 유통되는 정보나 물자의 양과 속도는 적고 더뎠으나, 6천 년 전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메트로폴리탄 웹은 정보와 물자를 더 많이 더 빠르게 전달했으며 그만큼 역사에서 수행하는 역할도 커졌다. 이런 웹들이 성장하고 융합함에 따라 고립된 상태로 존재하는 사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반면에 고립에서 벗어난 사회는 다른 사회와 보조를 함께 하면서 다른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해졌다.
코즈모폴리턴 웹은 1890년 이후 더욱 타이트해졌다. 지리적으로는 조금밖에 확대되지 않았으나 커뮤니케이션의 규모와 속도는 현저하게 증가했다. 이 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불평등이 커지자 분개한 사람들은 내셔널리즘과 전쟁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일부에게는 내셔널리즘과 전쟁을 불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일부에게는 그것을 더욱 신봉하는 동기가 되었다. 전후의 정치적·경제적 압박, 특히 공황으로 신음하던 세계는 내셔널리즘에 바탕을 둔 경제자립정책을 모색했고, 이 추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945년 이후 집권한 각국 정부는 다시 한번 통합과 세계화를 추진하여 미증유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일시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했다. 1980년 이후 기술개발과 정책이 결합되어 세계화가 가속화되었으나 이번에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코즈모폴리턴 웹은 지구상의 거주 가능한 지역, 모든 민족과 생태계를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요컨대 웹이 더욱 타이트해면서 부와 권력의 집중은 강화되었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장기적인 전망
1. 아들의 전망
지난 역사를 통해 명백히 알 수 있듯이 복잡한 사회는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정보화시대에 그런 불평등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자, 이 세상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현존하는 무기보다 파괴력이 큰 무기들이 개발된다면 안타깝지만 천재지변에 가까운 폭력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세기 동안의 장기적인 추세에 반할 뿐 아니라 소중한 자유의 관념에 제약을 가할 수도 있는 그런 노력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2. 아버지의 전망
앞으로 크고 작은 재앙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고 인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유연한 대처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면대면의 1차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런 공동체 내에서 의미와 가치, 목표를 공유함으로써 모든 성원, 심지어 가장 보잘것없고 불운한 자들에게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세포와 같은 1차공동체들이 현재의 인구와 부와 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전지구적인 코즈모폴리턴 웹 내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번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공생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도록 공생의 조건을 재검토하고 도시생활에 만연한 익명성을 상쇄해줄 1차공동체를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저자
존 맥닐(John R. McNeill)
미국 시카코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75년 스워스모어 칼리지를 졸업하고, 듀크 대학에서 1977년과 1981년에 각각 석사학위와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1985년 이후 줄곧 조지타운 대학 외무학교(School of Foreign Service) 및 역사학과의 역사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사·환경사·국제관계사를 가르치고, 특히 환경사 전공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Something New Under the Sun(2001)이 있다.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1917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4∼1939년에 시카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코넬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 군에 입대하여 5년 동안 군복무를 하고 복학, 1947년에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40년 간(1947∼1987)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명예교수이다. 이 책 『휴먼 웹』의 공동저자 존 맥닐의 아버지이다. 저서로 『전염병의 세계사』 『전쟁의 세계사』 『세계의 역사 1·2』 등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휴먼 웹연합뉴스서한기2007.07.25
02  인류역사 웹으로 풀어내다국민일보 2007.07.27
03  인간의 역사를 바꾼 군사기술동아일보권재현2005.10.08
04  인간사 물줄기 바꾼 전염병 전쟁 비합리성 고발세계일보심재천2005.10.08
05  대재앙 콜레라, 상하수도 시설 바꿨다중앙일보남윤호2005.10.08
06  전염병과 전쟁의 상관관계 '역사풀이'영남일보김봉규200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