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18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황런위(레이 황) 지음 / 이재정 옮김
2001년 5월 28일 발행 / 624쪽 / 값 25,000원

*전경련 선정 우수도서

"자본주의의 성공은 국가와 일체가 되고 그 자체가 국가가 된 데 있다."―페르낭 브로델. 이 책은 자본주의를 단순히 사회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기술적 관점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자본주의 600년의 역사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회고한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고,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급부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된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자본주의가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런 고통스러운 변화를 겪어야 하는가? 과연 자본주의는 모든 악의 근원인가? 이 책은 이런 총체적 의문을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저자는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둔 그의 역사적 통찰력은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기존의 수많은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이론들을 검토한 끝에 자본주의가 그 어떤 이론으로도 총괄할 수 없는 하나의 역사현상이라고 본다. 그래서 "새로운 교환방식은 동요하는 힘을 생산해낸다.…… 어떤 사회든 이런 충격을 받으면 '역사적인' 새로운 상황을 출현시킬 수 있다"는 페르낭 브로델의 견해에 동의하여, 역사를 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인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며 자본주의가 전개될 때 각 나라마다 나름의 극심한 변화가 발생했으므로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사람은 그 충돌하는 상황을 나라별로 기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역사성과 자본주의의 '기술적 성격'(자금의 광범위한 유통, 능력 위주의 경영인 고용, 기술적인 지지 요소의 확대)을 고려하여 그는 자본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본주의는 일종의 경제조직이자 제도로 물품의 생산과 분배를 사적 자본이 주관한다. 대체로 한 국가는 이 제도를 택하여 국민자본을 확충하는 것을 주요 임무의 하나로 삼는다. 따라서 사적 자본도 그 정치생활에서 특수한 비중을 차지한다."
자본주의의 세 선두주자
자본주의를 위와 같이 인식할 때 인류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가 성립된 곳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는 농업기반도 거대자본도 없었지만 상업자본을 발달시키고, 해외거점을 확보하고, 내부적으로 제한적이나마 대의정치를 실현함으로써 1000년부터 약 500년간 불과 10만의 인구로 제노바·피렌체·밀라노 등 막강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번영은 1400년을 전후해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베네치아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능가하는 나라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들은 베네치아보다 인구가 더 많고 더 넓은 바다를 무대로 활동했던 네덜란드와 영국이다. 네덜란드는 가톨릭의 속박에서 벗어나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이고 이주민들을 대규모로 흡수하여 은행업과 국제무역 그리고 식민지 지배를 통해 17세기에 유럽 자본주의 국가의 선두에 섰다. 한편 영국은 "자신이 진부하고 낙오되었음을 간파하고" 의식적으로 네덜란드를 모방하는 동시에 네덜란드보다 더 철저한 개혁을 실시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진전을 이룩했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의 내란과 영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공화정을 실시했으며(크롬웰의 집권), 왕정복고와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리하여 1700년 무렵 런던은 암스테르담을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이상의 세 나라의 역사에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전개될 때 반드시 과거 농업사회의 관리방식이 새로운 형태의 상업적 관리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 독일, 일본
미국은 자본주의 성립에 가장 유리한 지리적·역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유럽과 달리 미국은 외부의 침략을 받는 일 없이 내부의 각종 요소가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잠재적 요인을 사법과 입법을 통해 제거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은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라는 두 차례의 전쟁과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효율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기술적 성격, 곧 자금의 광범위한 유통과 경영자의 고용, 그리고 기술적 지지요소(교통, 통신, 보험 등)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고, 여기에 외부의 압력이 가해져 자본주의 체제로 진입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이 메이지 유신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성공은 동아시아의 주변국들과 불균형을 이루었으며, 이 불균형은 '대동아공영권' 같은 인종적 우월 관념을 낳고, 급기야 태평양전쟁을 초래했다. 독일은 19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봉건적인 농업국가였으며, 수십 개의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센의 왕이 맹주를 자처하며 개혁을 주도했다. 이때 군대와 관료기구는 개혁의 도구였다. 따라서 독일이 자본주의로 진입할 때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국가자본이 중심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수공업과 가내공업이 몰락했으며, 빈민과 실업자가 양산되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여성노동과 아동노동 등의 문제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비스마르크는 이런 사회불안 요소를 잠재우고 근대화 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해 통일운동을 주도하여 마침내 1871년 독일 제국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나라가 부강해지면 일반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논리는 독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의 행복을 부차적이거나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국가체제를 보존하는 것만 중시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세 혁명―프랑스 혁명, 러시아 10월혁명, 중국의 장기혁명
흔히 프랑스 혁명은 시민혁명(부르주아 혁명)으로, 러시아 혁명과 중국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규정한다. 이 책의 저자도 세 혁명이 각기 다른 사회환경에서 발생하고, 시간적·공간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며, 그 결과가 달랐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역사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 세 혁명은 대륙적 성격을 띤 국가에서 발생했으며, 농업 위주의 체제를 버리고 수량적으로 관리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강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세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개혁과정에서 유난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결국에는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농업체제에서 누적된 관습이 뿌리깊게 남아 있고 정치적으로 중앙집권화해야 하는 범위가 넓어 변화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과 차르 치하의 러시아 그리고 전통 중국은 기존체제가 매우 완고해서 여러 경제적 요소가 자유롭게 교환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세 혁명은 경제적 요소의 자유로운 교환을 방해하는 내부의 각종 장애요소를 혁명의 이름으로 청산하려 했다. 특히 러시아 혁명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한다"는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볼셰비키의 이상은 하나의 관념에 불과했으며, 실제로는 철저하게 당과 정부에서 지시한 교환방식에 의해 경제가 유지되었다. 전시체제에나 유용한 이런 방식이 장기적으로 계속되다보면 생산이 억제되고 노동자와 농민은 자신이 투여한 노동력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노동을 기피하게 된다. 그것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국가가 상호교환의 원칙을 전시체제에서 졸속으로 형성했다 하더라도 전시가 아닌 상태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사유재산권이 확보되도록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 책이 소련이 해체되기 전에 쓰여진 것을 고려할 때 저자의 이런 주장은 실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저자는 자본주의를 기술적 관점에서 보고 그 적극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이데올로기 중심의 관점에는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는다. 이데올로기 중심의 관점은 극단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오쩌둥의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판하고 전통 중국사회는 서구사회와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지적한다. 한마디로 전통 중국사회는 상업체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며, 적어도 송대 이후 천 년 이상 동안 이런 특징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사회의 경제적 요소가 자유롭게 교환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성(省)과 지방 사이의 대칭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 역점을 두었고 민법보다 형법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사회환경에서는 인구만 늘어날 뿐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는 없었다. 설령 예외적으로 부유한 개인이나 집안이 있다 해도 그 부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수 없었다. 결국 중국의 자본주의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하부구조가 재정비되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폭력을 동반한 장기혁명을 거쳐야 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넓은 영토와 엄청난 인구, 먼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뿌리깊은 사회조직을 가진 중국을 변화시키기란 들짐승을 단숨에 날짐승으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장제스와 마오쩌둥으로 대표되는 대중운동은 새로운 중국을 위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토대를 마련했다. 1949년 이후 중국의 미래는 이런 토대 위에서 설계되었다. 이제 중국의 목표는 자본주의의 전면적 실시도 아니며, 공산주의의 강제적 집행은 더더욱 아니다. 각각의 조건을 바탕으로 전 국민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계속된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쉽게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낙관한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선해서도 이상적이어서도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자금의 유통, 능력 위주의 경영인 고용, 기술적인 지지요소의 전반적인 지배를 중시하면서 인류가 함께 협력하는 테크닉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침략전쟁을 부추기기도 하고, 노동자와 여성을 착취하며, 인신매매나 마약판매에 이용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국제정의의 실현, 빈곤추방, 전쟁방지, 파시즘과 전시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고 자신의 폐해를 반성하고 사회주의가 제기한 의견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조직이자 운동으로 단지 이윤만을 최고로 여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 황런위/레이황(黃仁宇/Ray Huang)

1918년 6월 25일 중국 후난 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태어나, 2000년 1월 8일 미국에서 사망했다. 1950년 미국 미시간 대학에 입학하여 1954년에 학사를, 1957년에 석사를, 1964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야말로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역사학자였다. 이후 남일리노이 대학 조교수, 컬럼비아 대학 교환교수, 뉴욕 주립대학 교수, 하버드 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매크로 히스토리'(Macro History)라고 하는 독특한 사관(史觀)을 바탕으로 중국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황런위의 책들은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이야기의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출간될 때마다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중국과 타이완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늘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이 책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는 '황런위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저작 가운데 가히 압권이라고 할 만하다. 이 밖에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와 <거시중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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