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이산의책23 전장의 기억

전장의 기억
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 임성모 옮김
2002년 8월 10일 / 본문 304쪽 / 값 12,000원

*한국출판인회의 선정 이달의 책

전장을 기억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침묵을 강요당해 온 내부의 타자를 지금 여기에서 상기하는 일이다. 오키나와로 표상되는 제국주의의 폭력, 지금도 작동 중인 식민주의의 폭력에 맞서기 위한 저항으로서의 글쓰기.


'전장의 기억'과 '폭력의 예감' 
1995년 당시 일본은 전후 50년을 맞아 전후 책임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이 책의 지은이 도미야마 이치로 역시 전후 50년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매듭을 계기로 그간 자신이 전쟁과 전사(戰死)를 주제로 써왔던 글들을 모아서 그 해 8월 15일에 '전장의 기억'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1부에 해당하는 '전장의 기억'이다. 도미야마는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전장의 흔적은 희미해진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월되었으며, 또한 진부한 일상에서 전장이 준비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왜 전쟁이 아닌 전장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근대의 전쟁은 모든 공간을 전장으로, 모든 인간을 병사로 만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은이는 폭력을 예감하는 하나의 장(場)으로서 전장을 설정하고 있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전쟁동원'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대비되는 일상의 '전장동원'을 이야기한다. 그는 '전장동원'을 이렇게 규정한다. "전장이 일상화되고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사라져 모든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동원"이라고. 따라서 <전장의 기억>은 오키나와 전투라는 하나의 역사 속에서 전쟁동원이 전장동원의 성격을 띠게 되는 과정을 그려 나간 사고의 궤적이다. 그러나 지은이의 사고는 단순히 과거의 전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상이 전장화되어 가는 현실세계 속에서 폭력에 대항하는 투쟁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은이는 일본제국주의의 폭력이 전후 일본의 내부로 이월되었다고 보고, 계속해서 문제삼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결국 근대 속에 내재하는 식민주의의 폭력성이 아직도 단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2부 '폭력의 예감'은 지은이가 <전장의 기억>을 출간한 1995년 이후에 천착한 연구성과 가운데 특별히 주목되는 세 편의 논문을 가려 뽑은 것이다. 첫번째 글(5장) '폭력의 서술: 프란츠 파농'은 폭력을 어떻게 사고하고 서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이다. 여기서 파농에 주목하는 이유는 파농이 기존의 유일한 역사, 즉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무엇 무엇이 되어야 하는―예컨대 '프랑스인' '알제리인' 또는 '일본인' '오키나와인'이 되어야 하는―역사를 저지하고 끊임없이 비(非)역사로 거슬러 오르면서 부정형(不定形)의 사회를 열어 나가는 힘의 원천으로서 폭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폭력에 대한 파농의 서술을 쉼 없는 대항과 소행(遡行)의 운동으로 본다. 두번째 글(6장) '류큐인(琉球人)이라는 주체: 이하 후유(伊波普猷)'는 류큐가 일본의 오키나와 현이 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한편으로는 일류동조론(日琉同祖論)에 근거하여 일본에 포섭된 오키나와의 계몽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화될 수 없는 류큐인의 개성을 강조했던 오키나와학의 아버지 이하 후유 사상의 특징과 한계를 하나의 논거로 삼아 역사주체로서의 '류큐인'이 결국에는 해체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추적한다. 마지막 글(7장) '폭력의 예감'은 오키나와라고 명명된 지역을 둘러싼 근대의 담론―구체적으로는 구제(救濟)의 법과 관련된 논의―을 통해 법과 폭력의 문제를 다룬다. 이 글은 법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우리의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그것은 "법은 조직된 공적 폭력의 코드다"라는 니코스 풀란차스의 말로 집약되거니와 지은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폭력의 예감을 말한다. 법의 테두리 안을 극장이라고 한다면 연극을 한다는 것은, 연기하는 것 자체에서 그 극장이 국가의 폭력과 테러에 노출되어 있는 감옥임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자신이 국가의 폭력과 테러에 의해서 살해된 존재, 또는 살해당하려 하는 존재라는 것을 법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 자기 속에서 발견해내는 일이 바로 '폭력의 예감'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전장으로, 전장에서 일상으로
우리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지은이의 사고의 깊이에 압도당하게 된다. 제대로 독해(讀解)하기가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변적으로 보이는 그 문맥 속에는 엄청나게 예리한 비판의 칼날이 감춰져 있음을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지은이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자꾸 되살려 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국 근대사를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 전체에 걸쳐서 중심이 되는 시공간인 오키나와는 한국이라고 생각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이하 후유의 경우,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춘원 이광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일류동조론'에 동의하면서도 류큐인이 류큐 역사의 주체가 되길 바랐던 이하 후유나 끝까지 민족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일선동조론(日鮮同朝論)에 함몰되어 버린 이광수는 우리의 눈에는 닮은꼴로 다가온다. 태평양전쟁 때 자행된 오키나와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제주도 4·3 사건이나 한국전쟁 때의 민간인 학살사건, 그리고 1980년 5월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오키나와가 최근 우리의 기억에 결정적으로 각인된 미군기지 문제는 오늘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와 오키나와가 공유하는 폭력의 불씨로 남아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에는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전장에서 이월된 폭력이 망령처럼 들러붙어 있으며,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그 진부한 일상에서 또 다시 전장동원이 준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하나 지은이의 생각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폭력의 주체와 객체를 모두 문제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폭력의 주체와 객체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가해자'와 '희생자'로 묘사해 버리는 것을 경계한다. 그럴 경우, 잠재적인 폭력의 가능성과 잠재적인 저항의 가능성이 모두 봉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폭력에 대항할 가능성을 우리의 가능성으로서 사고하고, 서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의 전범처럼 보여준다. 그것도 집요하리 만치 세밀하게.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의 오감을 일순 마비시킬 정도로 처절한 다음과 같은 문장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폭력에 대항할 가능성을 사고하려면, 우리는 바로 죽은 자의 망막에 포착된, 그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체 옆에 있는 자는 항상 응시의 대상이며, 그런 의미에서 총살을 기다리는 사람들조차도 아직 결판이 난 것은 아니다. 망막에 각인된 그 영상은 나의 얼굴이자 당신의 얼굴일 것이다. 미흡하지만 이 책은 이런 사고의 궤적이다."

저자 도미야마 이치로(富山一郞)

1957년 일본 교토(京都) 시에서 태어났다. 교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베(神戶) 외국어대학을 거쳐, 현재 오사카(大阪) 대학 일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미야마의 주된 연구대상은 오사카로 유입된 오키나와(
沖繩) 이민이다. 그는 '오키나와인' '일본인'이라는 범주를 본질화하지 않고 노동규율의 문제와 연관시킴으로써, 이들의 정체성 문제를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교차하는 중층적인 문제로 분석했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동화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동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즉 자기 속의 타자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의 시선은 이 타자를 극복이나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거기서 폭력에 저항할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일상과 전장을 왕복하면서 도미야마는 평화스러운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폭력을 척결하는 한편, 전장 속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찾는다. 그가 새로이 주목하는 것은 폭력적 저항을 주장하면서도 임상적 관찰과 서술을 포기하지 않은 프란츠 파농의 모습이다. 이 파농이야말로 계속되는 폭력 속에서 오키나와를 서술하려는 이하 후유(
伊波普猷)이자 도미야마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폭력을 감지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향해 서술하는 행위이다. 저항으로서의 글쓰기, 도미야마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저서로 <근대 일본사회와 '오키나와인': '일본인'이 된다는 것>과 <폭력의 예감>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일본에 대한 원한 서린 '오키나와 섬이여'한겨레신문강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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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정희진의 책읽기]폭력에 맞선 저항은 가능한가한겨레신문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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