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일 일요일

이산의책50 룽산으로의 귀환

룽산으로의 귀환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2010.7.8/A5신/348쪽/18,000원
ISBN 978-89-87608-69-3

역사가이자 문학가였던 장다이(張岱)의 '꿈같은 회상'을 역사로 재현해낸 격랑의 명말청조 이야기.
사마천 같은 역사가가, 도연맹 같은 수필가가 되고 싶었던 명말의 역사문학가 장다이의 역사서술과 그가 전하는 그의 가족들의 삶을 통해 스펜스는 명말청초, 그 격랑의 역사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태평성대를 사는 사람은 자신이 향유하는 세계가 언젠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국의 갑작스러운 멸망의 이야기나 그런 파멸의 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의 경험담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고난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내심 불안의 눈길로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고 영화로웠던 과거로 귀환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 우리시대 최고의 중국사가 조너선 스펜스의 이 책은 바로 그런 귀환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장다이(張岱)는 1597년(만력25)에 태어나 1684년(강희23) 쯤에 죽었으니까 당시로서는 굉장한 장수를 누린 인물이었다. 장수 덕분에 그는 명말청초의 격변기를 고스란히 체험했는데, 생의 전반기에는 부귀를 누리다가 생의 후반기에는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가산을 전부 잃은 채 가난한 소작농이 되는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인간 장다이
장다이는 저장 성 사오싱(紹興)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의 장손이었다. 그의 집안은 고조부가 과거(科擧)의 최종 관문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면서부터 가세가 커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증조부와 조부까지 연속 3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면서 어느 집안에도 뒤지지 않는 명문가가 되었다. 특히 증조부는 전시(殿試)에 장원급제하여 한림원의 고위관료를 지냈다. 또 할머니의 아버지는 증조부의 절친한 친구이자 명조(明朝)의 최고관직인 대학사까지 역임한 인물이었다. 이런 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난 장다이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유년시절을 보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아버지 대(代)부터 집안의 운이 다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향시(鄕試)의 보충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간신히 거인(擧人) 행세를 하게 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장다이는 거인은 고사하고 생원도 되지 못했다. 비록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아버지가 못 이룬 진사의 꿈을 이루려 한때 노력을 했으나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집안환경이 그의 공부에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에게는 절박함이 없었다.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틀에 박힌 시험공부가 적성에 맞지도 않았다. 반면에 문밖을 나서면 그의 흥미를 끄는 재미난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부잣집 도련님답게 차(茶) 음미, 골동품이나 서화 감상, 거문고 연주, 등(燈) 수집, 투계(鬪鷄), 연극연출과 극단운영, 여행 등 참으로 다양한 취미생활에 몰두했다. 이런 성향을 가진 그가 평생을 과거시험에 매달린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긴다.
인생의 전환점
고생을 모르고 살아가던 장다이는 그의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영원히 그야말로 만대(萬代)를 이어갈 것만 같았던 명조가 느닷없이 멸망한 것이다. 명조의 자리는 만주족의 청조에 넘어갔다. 장다이는 왕조교체의 격변기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는 멸망한 왕조하에서 부와 권력을 누린 신분에 속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명조의 벼슬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의 선조들은 대대로 명조에서 벼슬살이를 했다. 이제 그에게는 세 가지 선택만이 가능했다. 하나는 새로운 지배자인 만주족에 투항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 두 번째는 명조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서 만주족에 대항하는 것, 세 번째는 현실을 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는 것. 장다이는 처음에는 두 번째 길을 택하려 했으나 남명(南明) 정권 지배자들의 한심한 작태에 실망하면서 모든 희망을 버리고 사찰을 전전하며 목숨을 부지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고향땅인 사오싱의 룽산(龍山)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수필가 장다이
만약 이대로 그의 삶이 끝났다면 우리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삶이 굴곡지긴 했지만, 이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았고, 그가 특별히 공식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경력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다이의 이름이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긴 많은 저작들 때문이다. 그는 명조 멸망 이후 피난생활을 하는 와중에 짬이 나면 마음에 남아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도암몽억』(陶庵夢憶), 즉 ‘도암의 꿈 같은 회상’이라는 제목 아래 주제별로 짤막한 산문들, 현대식으로 말하면 아포리즘 같은 수필들을 써 두었다. 각 수필에는 주제를 나타내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런 글들이 수백 편에 이르자 얄팍한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사실 장다이는 이 『도암몽억』을 출판할 계획은 없었으나 그의 원고를 본 친구들이 찬사를 보내면서 독서인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간결한 문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장다이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아무튼 『도암몽억』 덕분에 장다이는 큰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도암몽억』은 중국문학사에서 명청시대를 대표하는 수필집이 되었다. 역사가 장다이 그러나 장다이에게 『도암몽억』은 그저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그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역사와 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자기 손으로 명조의 역사와 교훈적인 전기를 써서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다. 이 꿈과 열정은 그가 죽기 전에 대부분 결실을 보았는데, 그 양이 혼자서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하다. 특히 명조의 역사를 『사기』(史記)와 같은 기전체 형식으로 쓴 『석궤서』와 『석궤서후집』은 그의 필생의 대작이다. 장다이는 명조 멸망 직후 가족도 친구도 재산도 모두 잃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에서 자결을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오로지 『석궤서』를 완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옛날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 자살을 생각하다가 『사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썩어가는 육신의 고통을 참아가며 『사기』를 집필했던 것처럼 말이다.
회상과 역사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났을 때의 감흥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운이다. 여기서 여운은 재미와 감동과 교훈이 도드라지지 않게 혼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여운은 스펜스의 다른 책―『강희제』 『반역의 책』 『근대중국의 서양인 고문들』 ―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이것은 스펜스 특유의 역사서술 방식에서 기인한다. 이것을 사람들은 문학적 상상력이 발휘된 역사라고 평한다. 스펜스의 책이 주는 묘미는 사료의 기록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부분 또는 과거의 기록 중에서 보통의 역사가들이 관심 갖지 않는 부분을 재구성해서 역사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국내에서는 전혀 소개되지 않았던 낯선 장다이가 박식하고 열정적인 역사가로 되살아난 것이다. 장다이의 ‘꿈 같은 회상’에서 실마리를 얻어 그의 궁극적인 꿈이 ‘명조 역사의 재생’에 있었음을 추적해가는 이 책은 한 인간의 전기인 동시에 그 시대의 역사이자 특별한 이야기로서 우리의 독서욕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은이 조너선 스펜스(Jonathan D. Spence)

미국 예일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며, 현재 미국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다.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윈체스터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1959년 예일 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1965년에 역사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구겐하임 펠로십, 맥아더 펠로십, 라이오넬 겔버상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예술과학원과 미국철학협회 회원이다.
역사와 문학을 접목한 그의 독특한 역사서술방식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 모두를 사로잡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쓴 책으로는 『현대 중국을 찾아서 1·2』 『천안문』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칸의 제국』 『강희제』 『왕 여인의 죽음』 『반역의 책』 등 10여 권이 있다.

북리뷰

 제목게재지글쓴이날짜
01  사람 볼 줄 모르는 황제… '제국의 멸망' 이유 있었네조선일보이한수2010.07.16
02 한량 장다이를 통해 본 명청교체기한겨레신문조기원201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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